입대하기 전에 알아두면 편한 습관들에 이어 오늘은 훈련소 밖에서 애타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가족 / 친구 / 애인들을 위한 일종의 팁(?)을 작성해봅니다. 지금 훈련받는 장병이나 곧 입대를 앞둔 지인을 두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뭐 안에서 보내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보내는 건데 굳이 알아둘게 있느냐' 라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충남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는 다른 교육기관들과는 다른 태생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크기"죠.

훈련소 본부의 직할대들을 제외하고서 7개의 교육 연대가 위치한 육군훈련소는 국내 최대, 아니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게 자랑거리일지는...;;) 단일 교육기관입니다. 연간 12만여명이 거쳐가고 하루 교육받는 인원 평균이 만여명에 달하는 메머드급 부대지요.

덕분에 편지 수발에 있어 종종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훈련병에게만 편지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이 곳 저 곳에서 훈련소 내로 오는 편지들을 모두 합하면 그 양이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간에 가끔 편지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특히 여자친구에게 줄편지를 받던 훈련병은 분대장에게 의문을 제기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86번 다음 87번 88번 편지가 없고 89번이 왔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ㅇㄹㅇㄹㅈ...

그래서 훈련소에 편지 보낼 시 알아두면 유용한 DO 와 DON'T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DO! 주소와 숫자는 정확하게, 그리고 크고 뚜렷하게

군부대로 편지를 보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 혹은 ~~분대 등 모두 숫자가 들어가니까요. 훈련소는 먼저 연대로 구별이 되는데, 여기서 숫자가 잘못 기재되면 그 편지는 절! 대! 받아야 할 훈련병이 못받는다고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만약 23연대로 가야할 편지가 25연대로 간다면? 기본적으로 주소지에 적힌 숫자로 빠르게 연대구분을 먼저 하는데, 거기서 잘못 걸려지면 뭐 별 수가 없습니다. 비단 연대 뿐만 아니라 소대 구분까지는 정확히 해주셔야 훈련병이 편지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답니다. 분대장들이 착할 경우 옆중대의 편지가 잘못 온 경우 전달해주는 경우가 있긴합니다만, 그런 위험은 줄이는게 좋죠.

참고로 훈련병 이름을 잘못 적으셨다해도 번호만 맞으면 편지는 제 때 도착한답니다 ^^


DON'T! 편지에 금지품목 넣기

네... 일반적으로 편지에 무언가를 꿍쳐서 보내시는 분들 많습니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정말 자주 오죠. 가장 자주 오는 것들 중 하나가 담배 한 두 가치나 두께가 굵지 않은 껌이나 사탕 같은거 그런 것들 자주 보내시더군요. 쏠라씨랑 레모나 보내시는 분들도 종종 있고... 한두개 숨겨보내면 무사히 도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_-?

일단 편지가 오면 중대에서 행정병이 소대별로 편지들을 구별하면서 평균보다 두껍거나 조금이라도 의심가면 다 따로 빼놓습니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담당 소대 분대장이 해당 훈련병을 따로 불러 훈련병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개봉하고 편지 이외의 모든 것들은 압수하지요 - 눈코뜰새 없이 바쁜 때는 행정병들이 임의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품들을 퇴소하는 날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죠 (그 날도 정말 바쁘기에;;)

가끔 센스있는 분들이 "양담배" 몇가치와 함께 '조교님들 수고하십니다 - 우리 XX 잘 봐주세요' 라는 쪽지를 말아넣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담배는 절대 주지 않습니다, 사탕 한 두개 정도라면 모를까... ^^; 물론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분대장이면 어림없습니다.


DO! 편지 봉투 확실히 밀봉하기

이건 특히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아리땁고 마음씨 고운 여성분들이 종종 실수하시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대다수가 남자친구에게 편지 보내는 설렘에 내용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편지 봉투까지 아주 반짝반짝 눈이부시게 꾸며서 보내더군요.

뭐 주소만 명확하다면 도착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가끔 풀 대신 볼륨있는 케릭터 스티커 같은거 한두개로 편지 봉투의 마무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종종 훈련소로 도착하는 수많은 편지들과 뒤섞이고 나뒹굴며 손상되거나 유실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어찌어찌 봉투는 도착했는데, 내용물이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당시 훈련병 표정이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러니 편지봉투는 가능하면 규격에 맞는걸 사용해주시고, 밀봉을 제대로 해주세요 -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됩니다. 


DON'T! 등기나 소포보내기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꼭! 반드시! 봉투에 쓰라고 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등기 및 소포 수취 불가" 라는 문구지요. 그런데 편지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 문구에 신경을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등기우편과 같은 경우에는 우편물의 취급과정을 세세히 기록해서 수취율을 높이는 것인데, 훈련소 지침상 간부들에게 오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부대로 등기를 받진 않습니다.

소포의 경우 편지 이외 다른 물품을 보내신다는 말인데, 원칙적으로 보급품 이외 일체의 바깥 물건을 통제하는 훈련소의 특성 상 훈련병에게 전달해 줄 수가 없답니다. 예외가 있다면 안경이 파손되어 새로운 안경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훈련병이 속해있는 소대의 소대장이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소포를 보내실 주소를 알려줍니다. 교관(소대장)이 수취하고 전달해주는 경우지요. 

가장 난감한 경우는 돗자리만한 편지와 함께 먹을거리가 잔뜩 온 경우인데... 이건 훈련 중대에 따라 취급하는 방침이 다 달라 달리 설명을 생략합니다. 확실한 건 훈련병이 편지는 받더라도 음식을 온전히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선물(?)은 자대 배치 받은 후에 해주시는게 좋답니다.


이 정도면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은 대충 적은 것 같네요. 간단하게 쓰고 끝내려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모쪼록 입대 후 모두를 위해 훈련받으며 구슬땀 흘리는 훈련병들이 애정어린 편지를 무사히 받고 힘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P.S. 친구 말대로 요점만 콕콕 집어서 간략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텐데, 정말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ㅜㅠ  

WRITTEN BY
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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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작년에 복학하고 나서 알게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이제서야 군대에 가는 어린 친구들이 다수보입니다. 그리고 저랑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택하는 대신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한 친구들 가운데 뒤늦게서야 군에 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 친구들이 요즘들어 제게 종종 여러 질문을 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훈련소 분대장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어보는 사항들도 비슷비슷하고 해서 그냥 한 번에 정리를 해주려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_-;;;

다음은 입대 전에 한 번 쯤 알아두고 시도해보면 훈련병 및 남은 군생활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는(???!!) 6가지 버릇 및 습관들입니다. 입대를 앞둔 분들이라면 조금이라도 편한(???!!) 훈련병 생활을 위한 가이드라 생각하시고, 군필자 분들은 '훈련병 시절엔 이 것 때문에 고생했지~' 라는 추억을 떠올리실 수 있을 듯 싶네요.



1.  식탁에 팔 기대지 않기 [★]

보통 입대하고 나면 열에 여덞은 어리버리한(?) 상태가 됩니다. 아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셈이지요;;; 덕분에 식사 시 지금 내 목으로 넘어가는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죠. 하지만 여기서 평상시의 잘못된 버릇이 나오는데.. 바로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팔을 식탁에 기대고 밥을 먹는 경우입니다. 

절도와 각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그 것도 훈련소에서 훈련병이 그렇게 밥먹는걸 그대로 두고보는 교관 / 분대장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그냥 호통이 확!!! 

생각보다 금방 고쳐지는 습관이지만, 군에서 적응하기도 힘든데 식사시간에 호통들으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미리 고쳐가면 식사시간이 편해집니다. 



2. 모자 (전투모) 제대로 쓰기 [★★]

사회에서는 모자를 뒤에서부터 눌러쓰죠.
군대에서는 모자를 앞에서부터 눌러씁니다. 
모자챙이 눈썹 바로 위를 덮을락 말락하게 쓰는 것이 올바른 착용방법입니다. 
이마를 훤히 드러내놓고 삐딱하게 전투모 쓰는 그대, 또다른 훈계 / 얼차려가 대기중입니다.



3. 신발 끌지 않기 [★★]

사회에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걷는지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쓸 일도 없지만, 군대에선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면 발을 맞춰서 걷는 일이 있지요. 발 맞추는 것 자체는 솔직히 눈치만 잘 보면서 하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신발끄는건 문제가 다릅니다. 이건 하도 오래 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몸에 베인 버릇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치는 것도 쉽지 않지요. 자신이 이 버릇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냥 다른 이에게 한 번 물어보면 됩니다. 만약 아스팔트 위에서 걸을 때 "칙~칙~" 소리가 난다면 100% 신발을 바닥에 끄는 타입입니다. 

신발을 끌면 않좋은 점은, (1) 흙위를 걸을때 흙먼지 작렬 (2) 전투화 뒷굽의 빠른 손상 (3) 과도한 물집발생 등이 있습니다 - 실제로 발만 끌지 않아도 물집 생기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이 외 부수적인 효과로는 교관 및 분대장들에게 얼차려를 유발한다는 점 - 아무래도 보지 않고 소리만으로 구별이 가능하니까요 ^^;;



4.  뒷짐 / 짝다리 짚지 않기 [★]

훈련병들에게 열중 쉬어 자세를 시키면 두 팔을 힘없게 내린채 엉덩이 근처에 포개어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올바른 자세는 팔을 허리 위로 올려서 팔이 늘어지지 않게 하는 겁니다. 짝다리의 경우는 체중을 오른쪽이나 왼쪽 다리에 싫은채 삐딱~하게 서있는 걸 뜻합니다. 역시 흔한 지적의 대상이 됩니다. 

훈련병 시절에 지적받는건 별거 아니라 넘어갈지 몰라도, 자대서 병생활 하는 내내 간부들에게 지적먹는 경우가 생깁니다. 병생활하면서 간부들과의 트러블은 피하는게 여러모로 좋은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



5. "~다" / "~까" [★★★]

군인을 규정짓는 가장 대표적인 습관들 중 하나지요. 모든 말은 항상 "~다" 나 "~까" 로 끝나야 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군대예절입니다;;; 평생 써 온 말투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들지만, 이리저리 굴러가며(?) 배우다보면 어느새 이게 입에 베이곤 하죠.

가끔 여기서 "나" 를 포함해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건 교관이나 상급자의 특권입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나" 라는 말을 쓴다는 것,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항목에 있어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정도가 되겠군요. 



6. 압존법 사용법 숙지하기 [
★]

개인적으로 분대장 생활 2년간 참 많이 써먹던 악마의 루프 -_-;;
그 어떤 훈련병도 결코 제대로 넘어가는 걸 본 적이 없는 압존법. 이걸 마스터해가면 훈련병 생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군생활, 혹은 사회생활마저도 무난하게 할 수 있지요;;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 입니다.  뭐 말로는 설명이 힘드니 예제를 들어봅니다. 

"아버지, 할아버님이 전화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와 "아버지, 할아버님이 전화하라고 하셨습니다" - 어떤 것이 옳을까요? 후자가 옳습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연장자지만 할아버님보다 연장자가 아니므로 전화하라고 말하는게 옳은 셈이지요.

이걸 군대버전으로 돌려보면...

"김병장님, 행보관님께서 분대장들 행정반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정도가 되는데, 말은 쉽지만 실제로 공포의 대상(?)인 선임자를 낮춘다는거 자체가 쉬운일이 아닙니다.

훈련병이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정말 높은 상급자가 왔을 때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죠. 실제로 제가 상병시절 훈련소장님이(!!!) 옆 중대에 오셔서 훈련병 한 명에게 훈련받기 어떠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그 훈련병 왈,

"네! 힘들긴 하지만 분대장님 및 소대장님이 잘 챙겨주셔서 할 만 합니다!!!" 라고 외쳤던... 그 훈련병 및 담당 분대장들의 뒷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알아가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충분하지만, 솔직히 군대가서 겪을걸 미리 준비해 간다는 것 자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겪어보기 전에는 남이 아무리 설명을 하고 말을 해줘도 알 수 없는게 군생활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군대 역시 사람사는 곳입니다. 지나가면 다 추억(?)이구요.

아무튼 이 무더운 여름 군입대를 앞둔 모든 분들, 파이팅입니다~ 꼭 살아남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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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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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보도가 되지 않을 뿐 군대란 곳에선 1년 내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법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않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심 '우리 부대는 아니겠지' 라는 마음이 드는게 솔직한 마음이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훈련병 사고 소식이 전해졌네요 - 고열 상태서 야간행군에 투입되었다가 급성 호흡곤란으로 유명을 달리한 훈련병... 

훈련소 분대장 동기가 링크걸어둔 기사를 보는데, 친구 말대로 의무병들이랑 훈련소 분대장들 그렇게 일하지 말란 댓글이 베플이네요. 08년 12월이면 제가 막내 분대장을 하던 시절인데, 이 댓글을 보고, 그리고 저 수많은 추천수를 보고 현역 시절 느끼던 억울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이렇게 급하게 포스팅을 해봅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훈련소에서 크고 작은 부상이 없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겠지요. 그리고 단체 생활을 하는 만큼, 아무리 개인 위생관리가 철저하다 하더라도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게 훈련소 생활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큰 문제는 전반적인 의료체계입니다. 

한해 평균 12만여명이 다녀가는 육군훈련소 - 우리 국군 최대 교육기관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항상 심각한 간부 및 병사 인원부족에 시달리는 피곤한 부대 중 하나랍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번에 문제가 되는 의료 체계와 같은 경우 2400여명의 인원이 교육받는 교육 연대에 배치되어 있는 군의관은 단 1명 이랍니다. 

군의관 1명이면 충분하지 않냐고요? 하루 2400명이 훈련받고 일과 후에 의무실을 이용하는 인원 평균 숫자가 얼마나 되시는지 아십니까? 군의관과 의무병들에게 있어 정말 운이 좋은 날은 50 ~ 60여 명이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12개의 중대에서 1개 중대 200명 중 하루 환자가 10명이 안된다 하더라도 최소 100여명입니다. 실제론 이보다 더 많지만, 그저 이 100명만 계산해보더라도 군의관님께서 1명당 딱 "3분"만 살펴보신다는 가정 하에 총 진료시간은 300분, 5시간입니다.

논산 육군훈련소는 교육을 행하는 주요 과목의 교장이 무척 멀리 떨어진 편입니다. 주요 과목 교육을 끝내고 복귀하면 오후 5시가 훌쩍 넘는 것은 무척이나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마져 생각될 정도니까요. 군대에서의 취침시간은 오후 10시 - 훈련 복귀 후 바로 의무실 진료를 본다 하더라도 1명 당 3분 이상씩 못보고 딱 100명 진료할 수 있네요. 

이런데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할까요?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까???

2년간의 육군훈련소 분대장 생활 도중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건 이유없이 갈구던 선임도, 그저 답이 보이지 않는 후임도, 끊임없이 작업을 주던 행보관님이나 휴가를 제한하던 간부님도 아니었습니다 - 제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프다고 의무실 이용을 바라는 훈련병들에게 "오늘은 안되겠다" 라고 말하며 그들을 설득해야 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제가 막내 분대장 생활을 할 당시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건 환자관리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최고 선임으로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것도 환자 관리였지요. 교육을 맏은 분대장이 무슨 '환자 관리' 냐고요? 말 그대로 '주요 환자' 가 나오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었지요. 예를 들자면 폐렴이나 결막염 환자가 나오는 것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제 군생활 기간에는 '신종플루' 감기 환자를 막는 것도 주된 임무였고요.

보통 어느 정도의 열을 동반한 감기 환자가 무척이나 많은데, 감기 기운 있다고 약받으러 의무실에 가겠다는 인원들이 적어도 몇십명은 됩니다. 감기환자들 중 '심각한' 인원들만 추려내야하는게 1차 목표인데, 대부분 다음 날 보내주겠다는 말로 다독입니다 - 분대장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그냥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사정은 다 비슷합니다.

환자들 중 1차로 인원들을 추려내면 2차로 '정말 심각한' 인원을 추려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정말 그대로 두면 큰일날 것 같은 인원들의 숫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거지요. 이 인원이 한두명일 경우 군의관님께 보냅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으면? 대부분의 경우 그들 중 제일 심각한 이 몇 명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사제 약' (특히 타이레놀) 을 주며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타이레놀 같은 사제 약은 어디서 구하냐고요? 보통 휴가복귀하는 분대장들이 자비를 들여 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휴가 복귀하며 타이레놀, 소염제, 항생제, 결막염 방지 안약 등 약만 한 두 봉지 가득 채워 사들고 복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비상용 약까지 떨어지면 고참 분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이는 통상 간부님들께 보고가 됩니다 - 

"지금 중대에 이러이러한 환자가들이 있는데,
진료보내면 논산병원으로 이송되거나 입실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
약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럴 때 환자가 있는 해당 소대의 소대장님들은 급한 경우 당일 밤 늦게 약국에서 약을 구해다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논산 국군 병원으로 후송되거나 입실을 하게 되는 경우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지요.

훈련소 바로 옆에 위치한 논산병원에 이송을 시키거나 입실을 꺼리는 까닭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다음 날 아침 훈련소장님께서 주관하시는 회의에 각 부대의 환자 현황 (특히 논산병원 진료환자) 과 의무실에 입실하고 있는 환자들의 증감현황이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이 부대는 환자가 많구만? 관리에 좀 더 신경써야겠어," 라는 훈련소장님(★★)의 말 한마디면 해당되는 모든 하급 부대가 뒤집히죠.

두번째 이유로는, 훈련병이 입실을 하고 있을 경우 교육을 빠지게 되고, 일정 시간 이상 교육에 불참하거나 주 교육을 놓치면 유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역시 훈련병 관리 허술, 즉 부대관리 허술로 기록됩니다. 간부님들의 인사관리에 기록이 남는다는데, 그걸 좋아하실리는 없겠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고되는 환자는 없는게 최고라는 인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는 발생하지 않는게 최선이고, 발생하더라도 상급 부대에 보고되지 않은 채 하급 부대 선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최상이라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러다보니 겉으로 보기엔 다른 일반 환자들과 같지만 속으론 큰 병이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이게 잘못하다 의무실 진료를 단 한 번이라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병이 터지는 상황이 나오게 되는거죠.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네... 표면적으론 병사인 분대장입니다. 
분대장들이 환자 조사하고 의무실 인솔까지 맡으니까...
훈련병들을 가장 가까이서 돌봐야하는 분대장이니까, 당연히 의무 소홀이 된 셈이죠.
근데 그거 아시나요?
의무를 다하려 모든 환자들을 의무실로 데려가면, 의무실 업무는 마비되고 자신보다 선임급 의무병들 및 간부들에게 욕은 욕대로 들어먹고...
그러다가 환자 터지면 또 한소리 듣죠, 왜 환자 관리 안했냐고...

대다수의 간부님들께서 의무실과 관련하여 훈련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대장들에게 얘기했으니 의무실 이용은 분대장에게 보고해라"
 

분대장들 고생하는 건 알지만서도 그게 그분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니까요.
 
그럼 내막을 모르는 훈련병들은 수근댑니다 -

"분대장들이 귀찮아서 환자들을 전부 의무실 보내지 않는거다" 라고...

분대장들도 병사고, 훈련병 시절 그대로 겪어 본 인원들입니다.
비록 분대장들이 전문적인 의료 지식은 없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훈련병들이 어떤 입장에 쳐해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픈 이들은 가능하면 전부 진료 받게 하고 건강한 모습 보고 싶어합니다.
최종적으론 무사하게 수료시켜 웃으며 자대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저희 마음처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네요... 
공식적인 규정에 따르면 저희는 '권한이 없는' 병사일 뿐이니까요.
속된 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병사니까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어린 꼬꼬마 막내 시절에는 너무 힘들어서 마음의 편지라는 극단적 방법도 생각했었죠.
하지만 고참이 되고 연대의 행정계열 병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 중대장님 이상 상급 지휘자에게 올라가는 마음의 편지들은 전에 미리 다 검열당한다는 사실... 

솔직히 작업은 얼마든 몸으로 때우면 되는 것이고, 잘 안되면 욕 한 번 듣고 담배 한 대 피워주고 다시 한 번 하면 되는 겁니다. 몸쓰는게 별건가요, 막사 이전 당시 12명 남짓이서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2개 대대 분량 철제 관물대 수백개 넘게 옮기고 바로 야간 교육 한 적도 있는데요 뭐.

교육 재료요? 잘 분실되는 것들이나 제때 보급 안되는, 하지만 검열은 자주 받는 그런 소모품은 휴가 복귀하면서 자비 들여서 사오면 됩니다. 그럼 충분히 메꿀 수 있어요. 가끔 소대장님들도 도와주시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면 되죠. 

일찍 일어나고 교육 준비하다 늦게 자고, 그리고 경계근무를 위해 밤에 깨는거요?
잠은 줄이면 그만입니다. 4시간 이상 못자고 교육 나간 적도 많고 밤새고 교육 나간 적도 있지만 악으로 버티면 그만입니다. 

근데 사람 건강가지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사회에서 들여오는 약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게다가 원칙적으론 하면 안되는 일이구요. 하지만 현실은 현실... 그렇게라도 안하면 환자관리 전혀 안됩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몇몇 훈련소 간부님들조차 어떻게 손을 대지 못해 분대장들이 휴가복귀하며 약사들고 오는 것을 묵인하고 때론 스스로 자비를 들여가며 약을 가져다 주시는 겁니다.  

육군에서 훈련소의 각 연대당 군의관 두 분 정도만 더 늘려주시면 지금보다 많은 훈련병들이 더 좋은 진료를 받고 건강하게 훈련받을 수 있을텐데...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 그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그래서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입대하실 분들, 혹은 훈련소를 거쳐갈 모든 분들,
제발 아프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아프다면,
어떤 말에도 굴하지 말고 반드시 진료 받아주세요. 

그게 여러분 스스로를 위한 길이고,
여러분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한 길이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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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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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훈련소 분대장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들 중 하나가 '편지' 였습니다. 건장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라지만, 부모님과 친구로부터 받아보는 편지에 마음 설레이지 않았던 훈련병 / 신병 시절을 거치지 않은 군필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떨어진 아들 / 친구 / 남자친구를 그리며 그의 편지를 기다려본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는 항상 편지가 넘칩니다 - 교육기 중에는 중대로 배달되는 편지가 백여통은 가볍게 넘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까요. 거기에 몇년 전부터 실시하는 인터넷 편지까지 합하면 분대장들에게 있어 거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랍니다. 덕분에 이 '편지'와 관련된 일화들이 수도 없지 많지만, 그들 중 '안부편지'에 관한 기억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모든 군부대에 있는 장병들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이상) 각종 명절에 집에 안부편지를 쓰라는 지시를 받곤 합니다. 어버이의 날도 그러한 날들 중 하나지요. 하지만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은 매주 주말 부모님께 안부편지를 작성합니다 - 바쁜 교육일정 속에서도 매일같이 마음 졸이고 계실 가족분들을 위해 훈련병들이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훈련병들의 경우는 항상 하고 싶은 말들이 많기에, 그리고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던 가족들의 소중함이 마음 속 깊이 와닿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만 나면 편지 쓰기에 몰입을 하곤 하는데, 종종 눈시울을 붉히는 인원들도 있곤 합니다. 비슷한 패턴의 교육기들이라 할지라도 훈련병들의 그런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 니들이 참 고생을 하긴 하지... '

라는 진솔한 측은지심과,

' 에효... 나보다 니들이 더 깝깝하겠지... '

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정심(?)이랄까요...;

하지만 훈련소라는, 아니 정확히는 징병제 군대인 국군의 특성 상 종종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가정 불화로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에게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훈련소의 '매주 부모님께 안부편지 쓰기' 라는 시간이 참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처음 경험없는 분대장 시절, 이런 이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 스스로도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와 이야기를 더 하려했고, 제가 어떻게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훈련 초기 안절부절 못하던 제 모습을 발견한 한 냉철한 선임은 "사정 없는 훈련병은 없다, 스스로 이겨내고 적응하게 해야 한다" 라는 충고를 해주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선임의 충고가 참 야속하고 냉정하게만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그 훈련병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지켜만 보라는 선임의 조언에는 100% 동의할 수 없었고 그 충고를 온전히 따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조언 덕분에 그가 지금 그 자신을 신경써주고 걱정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수료 즈음해서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육기 마지막 주차에 부모님께 제 평생 가장 긴 안부편지를 써서 보냈었습니다. 웬지 모르게 울컥해졌던 그 당시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네요. 

경험없던 저도 그 이후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스스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군생활을 통해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고, 하루 하루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으니 말이죠... 뭐랄까... 좀 더 성숙해졌다고나 할까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군생활이었지만, 이런 기억을 더듬어 볼 때면 참 잘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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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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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페이스북에서 "LJ님이 알지도 모르는 사람" 이라며 올라오는 추천인들 가운데 군대인연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방금 전에도 또 한 명의 군시절 인연을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났답니다. 근데... 다들 반갑기는 한데 페이스북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연결을 시키는 건지 후덜덜할 뿐입니다;;

아무튼 그 중 한 명이 올린 사진들 중 요런 사진이 있었습니다.

저 훈련병하고 저 뒷모습의 조교.. 분명 친숙한 모습인데..;;;


순간 멈칫 하고 깔깔거리며 웃었답니다.
1주차 훈련병의 당황해하는 얼굴과 분대장의 저 강압적인 자세 -
저거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방법이거든요.
당해본 적도 있고, 직접 사용해본 적도 있는, 효과 만점의 자세랍니다;;;

참 많은 이들이 분대장들을 악마라고 생각을 하곤 하지요. 뭐 나중에는 풀리는 기초군사훈련 기간 동안 쌓였던 앙금이 자연스레 풀리는 경우도 많지만, 분대장들의 경우 보통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 이란게 있는지라 먼저 훈련병들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경우가 제 기억에 있으니...

때는 09년 6월 경... 당시 마지막 5주차 교육으로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더위 때문에 진이 빠지는 날들이었는데, 하필 5주차로 접어드는 주말이 갑자기 더 힘들어지게 된 건 며칠 지나지 않아 전역할 규뱀 ( _ _ 규 병장 - 병장을 빠르게 반복해서 말하면 뱀이 된다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이해 불가;;;)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더위를 먹은건지 주말 훈련병 통제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죠. 아무리 집에 곧 갈 사람이라지만, 저 사람이 내뱉는 한마디에 저를 비롯한 후임들 선에서는 초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 핵쓰나미가 몰아칠 수 있기에... 

아무튼 덕분에 규뱀이 속한 3소대 훈련병들은 편한 주말을, 나머지 소대 훈련병들은 3소대 훈련병들이 빠진 만큼 좀 더 일을 해야했던 (통제하는 각 소대 분대장들 역시 같은 상황) 주말이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4주차 마지막과 5주차 주말에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건지, 3소대 훈련병들이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겁니다. 본디 5주차가 되면 좀 헤이해질 때가 된건데, 통제도 잘 따라주고 뭐든 척척해내며 타 소대의 귀감(?)이 되더군요. 게다가 더욱 신기한건 통칭 '개말년' 규뱀 자꾸 틈만나면 훈련병 생활관에 들락날락 거리십니다 -_-;;; 

"규뱀, 날씨때문에 더위먹은겁니까? 개 잡아드립니까?" 라는 농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드랬죠. 아무리 이 사람이 평소 좀 다정다감하고 '착한' 편에 속하는 선임이었다지만,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해야한다는 말년 병장인데 말입니다. 인원이 당시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실체는 훈련병들이 수료하기 전 격려 차원에서 열어주는 "훈련병의 밤" 행사에서 드러납니다. 당시 훈련 과정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격려해주는데, 규뱀과 3소대 훈련병 몇 명이 찍힌 사진이 나타난 순간 강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전! 지! 전! 능! _ _ 규!!!"
"사 ~ 랑 ~ 해 ~ 요 ~ _ _ 규!!!!!!"
"꺄아~~~~~~~~~~" 
"우 ~ 주 ~ 지 ~ 배 ~ K병장!!!"

...

=_=...

다른 소대 훈련병들과 강당 뒤쪽에서 행사 진행을 바라보던던 타 분대장들 및 간부님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미친듯이 웃기 시작합니다. 당시 강당이 무척이나 어두웠고 훈련병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괴성에 웬만한 말들이 묻힐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가끔 특정 분대장이 훈련병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는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전지전능은 뭐고 우주지배는 뭔지;;;;; 

그 날 밤 결산회의에서 규뱀 왈,

"훈련병들을 아량과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난 최고의 분대장이지 푸하하하하하" 

...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 못했답니다.

수료하는 그 날까지 규뱀을 향한 3소대의 광신적인 열정은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현상을 타 분대장들 및 간부님들은 "규뱀교" 라 정의지으며 일종의 사이비 종교 취급을 해버렸죠. 그 후로 1년이 지나 저도 말년에 참 이 것 저 것 많이 시도(?)를 해보았는데, 그런 반응을 얻을 수는 없더군요. 끽해야 사랑해요 정도?

나중에 규뱀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5주차의 미스테리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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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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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밤 갑자기 제 핸드폰으로 카톡 메세지 한통이 왔습니다. 오밤중에 누군가 해서 봤더니 이럴수가, 군에 있을 때 정말 제가 아끼던 홍일병이더군요. 군번이 꼬이디 꼬여서 일병 계급 내내 막내 가까운 생활을 해야하던 친구였는데, 아니 글쎄 벌써 전역이 5일 밖에 안남은 상태에서 마지막 휴가 복귀를 앞두고 있다고 하네요. 순간 잠이 확깨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

보통 군대에서 '분대장' 이라 함은 10여명 정도의 병사로 이루어진 분대를 이끄는 선임 병사 및 부사관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육군훈련소에서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 저 분대장이란 단어입니다. 보통 사회에서 '조교' 라는 이름으로 칭하는 병사들을 육군훈련소에서는 '분대장' 이라 부릅니다. 이는 훈련소 내의 교육 시스템 때문인데, 한 명의 분대장이 평균 10~14명의 훈련병들을 책임지고 '장' 으로서 이끌며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지요. 

육군훈련소에서 연간 배출되는 약 12만명의 훈련병들 가운데 매년 800 ~ 900명 가량이 훈련소 분대장으로 선발이 됩니다. 이들은 특기 없이 입대한 청년들 중에서 선발이 되는데, 신체조건과 인성 및 지능검사 결과를 통해 1차 선발을 하고 훈련 초반 2주간에 걸쳐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그리고 훈련소 본부의 참모들과 참모장(✭)에 이르는 다단계의 면담(?)과 소양평가를 거쳐 최종적인 선발 유무가 결정됩니다. 

동기가 찍은 호각, 사슬, 견장, 휘장

엄격한 선발 과정을 뚫고 뽑힌 최종 선발자들은 모든 동기들을 떠나보낸 이후 각자 훈련소 내 7개의 교육연대로 배치를 받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연대에서 약 한달여간의 교육을 받은 후에 훈련소 내의 분대장 교육대에서 3주간의 혹독한 훈련 및 모든 교육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모든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훈련소 분대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챙의 모자와 가슴에 패용하는 휘장, 그리고 지휘관의 신분을 나타내는 녹색 견장을 훈련소장 및 자신의 속한 연대의 연대장으로부터 선사받게 됩니다. 진정한 군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죠. 

훈련소 분대장에게는 몇가지의 특전들이 주어지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많은 휴가입니다. 병사에게 있어 휴가란 가뭄 속의 단비요, 보통 2개 기수의 교육이 끝나고 3박 4일이나 4박 5일의 휴가가 주어지곤 하는데, 2개 기수의 교육이라 하면 보통 3달 정도의 기간입니다. 얼추 계산해보면 적어도 일년에 4번은 집에 갈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휴가들이 거져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일종의 '보상'이니까요. 훈련뵹 기수가 들어와 있는 동안 이들에겐 정해진 일과시간이 없습니다. 하루 웬종일 훈련병들에게 붙어서 지도를 해야하고, 훈련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은 다음 교육을 준비하니까요. 훈련병들이 일어나기 이전에 잠에서 깨야하고, 훈련병들이 잠이 든 이후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벚습니다. 밤에는 모든 군인들이 그러하듯 무장을 하고 경계근무를 나가고요. 훈련병이 있는 기간만큼은 휴일없는 주 7일 근무를 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일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권상우씨가 육군훈련소의 분대장 생활에서 얻은 경험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듯이,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그 어느 부대보다 풍부한 곳이고 자기 관리 및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기를 수 있는 곳입니다. 아, 부수적인 것으로 각종 공구 사용법 및 작업 기술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 연대의 관리구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소요는 분대장들이 해결하니까요. 

즉, 교육에서부터 조직관리각종 작업 등 자신의 한계를 다방면으로 확실하게 테스트할 수 있답니다 -_-;;;


많은 이들에게 때론 사악하고 감정없어 보이는 훈련소 분대장들도 결국은 국방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중인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명예롭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혹시라도 주변에 훈련소에서 분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휴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것 같다며 구박하지 마시고 "훈련병들 교육시키느라 수고가 많아~ 조금만 더 힘내라" 라고 격려 한 번 해줘보세요. 아마 너무 고마워서 밥 + α 를 제공해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아질 테니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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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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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현지시각 4월 26일 부) 복학 후 1년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응하기 힘든 문제도 있었고, 군에 있을 동안 전혀 손을 대지 못했던 전공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여러가지 말못할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할 겸 학교 내 잔디밭에 앉아 책도 읽고, 그늘에 누워서 살짝 낮잠도 즐겨주고 했답니다. 근데 많지는 않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들이 문득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진정 봄이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2주 전엔 눈이 왔던 곳이니까요 ^^;;) 작년 이맘 때 즈음이 생각났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훈련소 (KATC: Korean Army Training Center) 에는 '연무문' 이라 불리는, 짙은 녹색의 기와가 올려진 거대한 흰색의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연무대' 라 칭한 훈련소의 상징과도 같은 역활을 하는 문입니다. 문 뒤로는 왕복 4차선의 일자형 도로, 편의상 훈련소 주도로라 불리는 도로가 훈련소의 중앙까지 곧게 뻗어있죠. 훈련소에서 제가 속해 있던 곳은 제29교육연대, 신막사로 이전하면서 연무문 근처 훈련소의 최외곽지역에 위치했던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훈련소의 정문 겪인 연무문과 가깝다는 이유로 연무문 및 주도로는 저희의 정리 담당구역이었습니다... ㅠ


며칠 전 부대 방문한 동기가..

항상 봄만 되면 금방 피었다 떨어지는 벚꽃잎과 목련 때문에 항상 정리를 해야하던 주도로 - 덕분에 무척이나 많은 노동거리를(?) 제공하던 주도로의 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특히나 이 곳을 통해 귀한 손님들(?)도 자주 오시기 때문에 비단 봄 뿐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항상 정리된 모습을 유지해야 했어야 했기에... 주도로에 위치한 수많은 나무들은 아름다움보다는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이런 인식에 지난 2010년 4월에 변화가 옵니다.

작년 4월의 막바지, 제 마지막 훈련병 기수가 오전의 사격술 예비훈련을 마치고 정훈 교육을 들어간 틈을 이용해서 동기 / 후임들과 함께 '영광의 전역마크'를 부착할 군복을 군장점에 (사회의 수선점과 비슷) 맡기고 돌아오는 길어었습니다. 모두들 곧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보였고, 회상의 대상이 되는 모든 추억들은 모두에게 다양한 종류의 웃음들(?)을 안겨주었죠. 그 때의 기분 탓이었을까요?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시야에 들어온 주도로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무척이나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훈련소 주도로 - 2010년 4월의 어느 날...


당시 조각을 맞추듯 기억해낸 주도로의 사계절, 비록 기억 속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꽃들과 자라나는 푸른 싹들이 따사로운 태양아래서 빛나고, 여름이면 우거진 녹색의 나무들이 위용을 뽐내며, 가을에는 어김없이 떨어지는 낙엽들이 많은 이들을 우수에 젖게 만들었죠. 겨울에는 하얀 눈이 텅 빈 도로를 하얀 눈이 뒤덮고 이를 옆에서 감싸는 눈쌓인 나무들은 장관을 이루곤 했었죠. 이 모든 것을  훈련소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자각했다고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오더군요.

군생활이나 사회생활, 차이는 뚜렷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 / 해야할 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정작 자기 주변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참 아름답고 따뜻한게 이 세상인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바쁜 임무에 쫓기며 고생한 모두가 그리워집니다 -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그들과 좀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거란 아쉬움에...

만약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똑같이 힘들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추억들과 인연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_____^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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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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