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을 하다보면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중 하나가 의도치 않게 머리가 길어진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머리가 지저분해 보일 정도로 길어지는데, 이를 자르기 위해선 상당한 금전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각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남성용 컷트를 하는데 드는 기본 비용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달러 가량, 한국으로 치면 얼추 4만 4천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이발도 어디까지나 서비스업, 일반적으로 15%~20%의 팁을 준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40달러의 비용이 나왔다고 했을때 46~50달러 가량의 비용을 실질적인 이발비용으로 삼아야 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패션에는 큰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발을 할 때는 항상 어릴 때부터 다니던 단골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가서 만원 이하의 비용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곤 했는데... 일반적인 이발에 최소 5만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셈법을 하니 도저히 미국에선 선뜻 이발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머리를 영 잘 다루지 못해 안깎느니 못한 결과물을 얻어본 경험이 있던지라, 거추장스런 장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패션에 신경쓰지 않는 내가 못받아들일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였다. 오죽하면 정상적인 머리가 황비홍에 나오는 변발같다고 놀림을 받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간단한 알람시계를 사러 SEARS 쇼핑몰을 누비던 도중이었다. 알림시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장비가 소위 "바리깡"이라 불리는 이발기였다. 약 50달러에 이르는 장비였는데,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이발기만 사들고 집으로 황급히 돌아왔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이발기를 잡고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렸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던게 2007년의 10월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편하게 학교를 다니기 위해 3mm, 혹은 6mm로 짧게 전체를 밀어버리기만 하는 단순한 이발을 했었다. 하지만 이후 훈련소에서 복무하며 수많은 훈련병들과 후임들, 그리고 내 스스로의 머리를 직접 깎아보며 일명 "실전 바리깡 사용법" 이라는 기술을 획득하고 나서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나름 윗머리를 살리기도 하고, 안경때문에 수시로 양갈래로 갈라져 나오는 구렛나루 부분만 간단하게 관리해 주는 등... 다른 이들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크게 이상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이발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5년이 지난 이제서야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참 무모한 짓이었다. 대형 쓰레기통 위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 내 스스로 이발을 한단 말에 기겁을 하던 친구들도 몇몇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달이나 두달 사이에 한 번 정도 머리를 정리해줘야 한다고 가정했을때, 지난 5년여간 못해도 2천~3천달러 가량을 아낄 수 있었던 듯 싶다. 


이제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이발할 일은 없겠지만, 유학 도중 돈을 아낀 사실을 떠나 평생 이야기거리가 될 추억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그저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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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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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력은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정작 누군가의 기념일이나 실생활에 관련된 일, 혹은 학교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기억하는덴 어딘가 나사하나가 빠진 듯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 사람과 대화한 내용들, 혹은 그냥 지나쳐간 사소한 일들은 이상하리만큼 기억을 잘 하곤 하니까요.

아무튼 중요한 건 오늘은 6월 23일, 제게 있어선 무척이나 특별한 날입니다.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날짜라곤 세는데 열손가락도 필요없는 제가 기억하는 날 중 하나니까요...

가족이나 절친한 지인의 생일은 당연히 아니고, 여자친구가 생겨 기념하는 날은 아닙니다. 과거에 실연당한 아픔이 너무 커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그런 날짜는 더더욱 아니지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날이길래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의 청년이 기억할지 대충 짐작이 오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3년 전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한국은 지금 23일 새벽 6시 13분 정도 되었겠지요) 에 전 누구하나 깨우는 사람도 없이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 전날 분명히 신촌에서 친구와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하고 넋이 나간 상태로 집에 돌아온게 그 날 새벽 2시가 넘었었는데, 이상하게 술기운 하나 없이 말짱하게 깨어났죠. 그 날 아침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졌었는데...

2년 전 오늘, '아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1년 전 오늘, 전 친구와 함께 5일 뒤 출발인 유럽여행에 쓸 배낭을 찾아 동대문을 하루종일 돌아다녔죠 - 당시 먹고 싶은게 시장길거리에서 보이면 참지 않았더랬죠. 그러고보니 이 친구는 오늘 학교 프로그램에 뽑혀 3주간의 동유럽 일정에 다시 떠나는 날이기도 하군요.

그리고 2011년 6월 23일..
여명은 트지도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는 이른 새벽 5시 경, 악몽을 꾸고 온 몸이 흠뻑 젖은채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동안 입밖에 내지도 않았던 '관.등.성.명.' 과 함께 말이죠 =_=...

네... 대충 짐작하신 분들이 계시듯 제 군입대 날이었습니다.
짧은 머리에 가족들을 뒤로하고 2년간의 복무를 시작한 바로 그 날...
그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그 날 일정조차 소상하게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조용히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입대 한 시간 반 전 연무읍에 위치한 '본 죽' 에서 전복죽 한 그릇을 천천히 먹었드랬죠.
그 넘기기 쉬운 죽이 왜 그리 안넘어가던지...
그리고 당시 그 곳이 제 자대가 될 것이란 것은 생각지도 못한채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이상하게 그 날 찍은 사진 한 장 조차 없는데, 개인 소지품은 모조뢰 돌려보내고 당시 지급받은 수첩은 훈련기간 동안 사라져 훈련병 시절 초기의 일기는 남아있지도 않은데, 이상하리만큼 더 뚜렷하게 기억이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한 때일 뿐이지만, 어찌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지요... 
웬지모르게 기분이 오묘해지는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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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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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훈련소 분대장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들 중 하나가 '편지' 였습니다. 건장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라지만, 부모님과 친구로부터 받아보는 편지에 마음 설레이지 않았던 훈련병 / 신병 시절을 거치지 않은 군필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떨어진 아들 / 친구 / 남자친구를 그리며 그의 편지를 기다려본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는 항상 편지가 넘칩니다 - 교육기 중에는 중대로 배달되는 편지가 백여통은 가볍게 넘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까요. 거기에 몇년 전부터 실시하는 인터넷 편지까지 합하면 분대장들에게 있어 거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랍니다. 덕분에 이 '편지'와 관련된 일화들이 수도 없지 많지만, 그들 중 '안부편지'에 관한 기억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모든 군부대에 있는 장병들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이상) 각종 명절에 집에 안부편지를 쓰라는 지시를 받곤 합니다. 어버이의 날도 그러한 날들 중 하나지요. 하지만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은 매주 주말 부모님께 안부편지를 작성합니다 - 바쁜 교육일정 속에서도 매일같이 마음 졸이고 계실 가족분들을 위해 훈련병들이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훈련병들의 경우는 항상 하고 싶은 말들이 많기에, 그리고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던 가족들의 소중함이 마음 속 깊이 와닿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만 나면 편지 쓰기에 몰입을 하곤 하는데, 종종 눈시울을 붉히는 인원들도 있곤 합니다. 비슷한 패턴의 교육기들이라 할지라도 훈련병들의 그런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 니들이 참 고생을 하긴 하지... '

라는 진솔한 측은지심과,

' 에효... 나보다 니들이 더 깝깝하겠지... '

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정심(?)이랄까요...;

하지만 훈련소라는, 아니 정확히는 징병제 군대인 국군의 특성 상 종종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가정 불화로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에게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훈련소의 '매주 부모님께 안부편지 쓰기' 라는 시간이 참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처음 경험없는 분대장 시절, 이런 이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 스스로도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와 이야기를 더 하려했고, 제가 어떻게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훈련 초기 안절부절 못하던 제 모습을 발견한 한 냉철한 선임은 "사정 없는 훈련병은 없다, 스스로 이겨내고 적응하게 해야 한다" 라는 충고를 해주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선임의 충고가 참 야속하고 냉정하게만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그 훈련병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지켜만 보라는 선임의 조언에는 100% 동의할 수 없었고 그 충고를 온전히 따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조언 덕분에 그가 지금 그 자신을 신경써주고 걱정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수료 즈음해서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육기 마지막 주차에 부모님께 제 평생 가장 긴 안부편지를 써서 보냈었습니다. 웬지 모르게 울컥해졌던 그 당시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네요. 

경험없던 저도 그 이후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스스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군생활을 통해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고, 하루 하루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으니 말이죠... 뭐랄까... 좀 더 성숙해졌다고나 할까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군생활이었지만, 이런 기억을 더듬어 볼 때면 참 잘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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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현지시각 4월 26일 부) 복학 후 1년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응하기 힘든 문제도 있었고, 군에 있을 동안 전혀 손을 대지 못했던 전공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여러가지 말못할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할 겸 학교 내 잔디밭에 앉아 책도 읽고, 그늘에 누워서 살짝 낮잠도 즐겨주고 했답니다. 근데 많지는 않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들이 문득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진정 봄이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2주 전엔 눈이 왔던 곳이니까요 ^^;;) 작년 이맘 때 즈음이 생각났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훈련소 (KATC: Korean Army Training Center) 에는 '연무문' 이라 불리는, 짙은 녹색의 기와가 올려진 거대한 흰색의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연무대' 라 칭한 훈련소의 상징과도 같은 역활을 하는 문입니다. 문 뒤로는 왕복 4차선의 일자형 도로, 편의상 훈련소 주도로라 불리는 도로가 훈련소의 중앙까지 곧게 뻗어있죠. 훈련소에서 제가 속해 있던 곳은 제29교육연대, 신막사로 이전하면서 연무문 근처 훈련소의 최외곽지역에 위치했던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훈련소의 정문 겪인 연무문과 가깝다는 이유로 연무문 및 주도로는 저희의 정리 담당구역이었습니다... ㅠ


며칠 전 부대 방문한 동기가..

항상 봄만 되면 금방 피었다 떨어지는 벚꽃잎과 목련 때문에 항상 정리를 해야하던 주도로 - 덕분에 무척이나 많은 노동거리를(?) 제공하던 주도로의 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특히나 이 곳을 통해 귀한 손님들(?)도 자주 오시기 때문에 비단 봄 뿐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항상 정리된 모습을 유지해야 했어야 했기에... 주도로에 위치한 수많은 나무들은 아름다움보다는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이런 인식에 지난 2010년 4월에 변화가 옵니다.

작년 4월의 막바지, 제 마지막 훈련병 기수가 오전의 사격술 예비훈련을 마치고 정훈 교육을 들어간 틈을 이용해서 동기 / 후임들과 함께 '영광의 전역마크'를 부착할 군복을 군장점에 (사회의 수선점과 비슷) 맡기고 돌아오는 길어었습니다. 모두들 곧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보였고, 회상의 대상이 되는 모든 추억들은 모두에게 다양한 종류의 웃음들(?)을 안겨주었죠. 그 때의 기분 탓이었을까요?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시야에 들어온 주도로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무척이나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훈련소 주도로 - 2010년 4월의 어느 날...


당시 조각을 맞추듯 기억해낸 주도로의 사계절, 비록 기억 속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꽃들과 자라나는 푸른 싹들이 따사로운 태양아래서 빛나고, 여름이면 우거진 녹색의 나무들이 위용을 뽐내며, 가을에는 어김없이 떨어지는 낙엽들이 많은 이들을 우수에 젖게 만들었죠. 겨울에는 하얀 눈이 텅 빈 도로를 하얀 눈이 뒤덮고 이를 옆에서 감싸는 눈쌓인 나무들은 장관을 이루곤 했었죠. 이 모든 것을  훈련소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자각했다고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오더군요.

군생활이나 사회생활, 차이는 뚜렷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 / 해야할 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정작 자기 주변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참 아름답고 따뜻한게 이 세상인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바쁜 임무에 쫓기며 고생한 모두가 그리워집니다 -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그들과 좀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거란 아쉬움에...

만약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똑같이 힘들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추억들과 인연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_____^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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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스케이트를 타 본 것이 언제였더라...?
적어도 한 3년은 지나지 않았나싶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 기숙사에 같이 살던 친구들과 친목을 다질겸 갔을 때 이후론 단 한번도 스케이트장을 찾을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스케이트 = 김연아' 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힌 것 외에는 크게 생각도 안해본 것 같다. 

그런데 시험시작을 3일 정도 앞두고 참 특별한 기회가 생겼었다. 
학교 미식축구경기장에서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것 - 최대의 관중이 운집한 야외 아이스하키 경기에 도전하는 특별한 행사,  이름하여 "Big Chill" (학교 경기장의 애칭인 Big House에서 따온 듯..?)


13일 월요일날 시험이 있어 게임을 보러갈 생각은 못했지만, 다녀온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무척이나 화려한 게임이었댄다. 눈내리는 날씨 속 11만 3천명이 경기장에 모였었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았다고 하니... 기네스북에 집계된 '순수관중' 은 8만 5천명 가량이지만, 어찌되었든 세계 최고의 기록이라고 한다. 

게다가 경기 시작전 학교 동문이 조종하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경기장 위를 비행하며 경기 시작의 흥을 돋구었다고 한다. A-10 탱크킬러나 F-16, F-15 등은 자주 봤었어도 저 녀석은 단 한번도 본 적 없었는데, 친구들말에 따르면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이 걸 모르고 있던 군대 안다녀온, 경기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UFO가 나타난 줄 알았다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무척이나 아쉬워하는데, 아이스하키 경기장이 해체되기 전 12일 일요일에 약 30분 정도씩 일반 대중에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경기장이 공개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간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P.S. 학교 재학생이 Big House 의 경기장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경우는 딱 2가지의 경우다. OSU를 짓밟아버린 게임 이후, 혹은 봄학기 졸업식. 그렇기에 겨울에 졸업하는 경우 아예 필드에 발도 못붙여보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다. 

12일 아침부터 눈발이 휘날리고 칼날같은 바람이 불었지만, 갈 수 밖에 없었다. 나 또한 겨울 학기에 졸업이 예정되어 있기에, 잘못하면 평생 스타디움에 발을 못붙여볼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시험은 이번 학기 말고도 기회가 있지만 내 생에 언제 또 학교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보리... 정말 학교 측 설명대로 "Once in a Life time experience (생에 단 한번의 경험)"일 수 밖에 없기에.. 

관중들이 차면 보이지도 않는 M 마크... 구글 맵에서 위성사진으로 봐도 보일 정도로 크고 선명하다.

웃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좋아서 한 컷,

여기저기 넘어지는 아이들이 보이지만 마냥 즐거워보이는 듯,

저기 얘야!! 그 눈은 먹는게 아닌데..!!;;;;


칼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날씨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30분 단위로 계속 잡혀진 여러개의 세션때문이었는지 못움직일 정도로 사람이 크게 붐비지는 않았다. 덕분에 처음에는 좀 중심잡느라 고생을 했지만 곧 감을 찾은 이후에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스케이트를 타며 주로 든 생각은, '아 김연아 선수 정말 대단하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저 때 스케이트를 타고 이후 친구들과 눈쌓인 경기장에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보낸 약 2시간 동안 공부를 했었더라면 성적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 대학 생활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경험을 얻었으니 말이다 ^-^

필드의 '터치다운 존'에 누워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부만 하면서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는 것은 더 슬픈 일이 아닐까?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공부만큼 중요한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번 추억을 바탕으로 다음 학기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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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K.A.T.C. 2010. 3. 5. 19:02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내 위로 두 명 남아있네.

한 명은 곧 전역할 것이고,

다른 한 명은 3월이 가면 역시 자신의 길을 찾아가겠지.

기뻐야하는데,

생각만큼 기쁘지만은 않다.

함께 고생해온 사람들이 먼저 떠나간다는 것 -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입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간직해오고 있는 내 일기장도

이제 몇 장 남아있지 않고...

괴롭웠지만 추억이 없다고는 말 못할 이 곳 육군훈련소 생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이 곳에서 만들어진 추억과 인연을 회상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내 마지막 훈련병 기수의 퇴소와 함께...


마지막 428기 -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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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것들이 바뀌고 또 바뀌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 것처럼 야속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좋았던 기억,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 또는 이도저도 아니게 흘러간 일상들.
이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가끔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내가 너무 과거에 얽매여서 사는 것 아니냐고.
글쎄.. 그런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나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기 보다는 과거의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란 내겐 아쉬움을 주고, 때론 야속하게마저 느껴지나보다.

부대 복귀 하루 전, 운좋게 연락이 된 오랜 지기와 만나고 왔다.
조용히 따뜻한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많은 이야기들.
빛바랜 추억들에 대한 향수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조용한 음악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선술집의 분위기에 자연스레 이끌린 듯 오간 대화...

그와 나는 유난히도 운이 좋았던 경우에 속한다.
한층 좋아지지 않는 경제 속에서도 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다른 많은 이들과는 다르게 그와 나에게 있어서 그 시기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는 것.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듣고 공부하며 좋아했던 시간.
여러가지 운동에 도전해보고 성취를 얻으며 즐거워했던 시간.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고 친구들과 같이 하던 시간을 순수히 즐기던 일.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고 꿈같던 추억을 함께 만들어갔던 일.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던 그 시간들.

그 당시에도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일들이지 않나 싶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시기도 아련한 과거의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
아련해서일까? 그 시절이 유난히도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모두가 겪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니까 -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도 남고 추억도 남으니까.
때론 야속하지만, 그렇기에 지나간 시간들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현재를 멋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전역을 하고,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흐르고,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오늘의 나를 웃으며 기억할 수 있도록...

두서없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2009년을 보내며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고 이만 마무리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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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입대를 25일 남겨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
내가 집에서 조용히 책이나 보고, 한동안 하지 못하던 운동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던 탓일까? 많은 사람들이 내게 허송세월 하지 말고 친구들도 더 자주 보고 술자리도 가지고 혹은 클럽에 가서 재미(?) 좀 보라고 한다. 오죽하셨으면 부모님조차 용돈을 슬그머니 찔러주시면서 놀러다니라고 하실까?

그래서 며칠 전부터 동생과 함께 일주일 가량 다녀올 수 있는 국내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서해안을 따라 남해안, 그리고 동해안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기차여행 코스를. 인터넷으로 찾으면 너무 금방 찾을 것 같아 내 방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지도를 찾는 도중 우연히 찾게 된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투 한자루. 지난 몇년간의 유학생활로 거의 창고화 되다 시피 한 내 방에서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봉투이기에 그냥 쓰레기인 줄 알았건만,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열어본 그 봉투의 내용물은... 과거의 추억들... 단순히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추억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는 물건들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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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일기... '후배'와의 축구시합이라, 웃음밖엔 나오지 않는다. 기억조차 없지만 '기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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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 연평 해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아침 자습시간에 썼던 나름대로 '순수했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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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 2002년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던 저 도장을 제일 많이 모으는 '조'에게 담임선생님이 매달 말 피자를 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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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 후 수련회 - 이 사진과 함께 은사님께서 졸업 전 써주신 편지도 찾았다. 아직도 그 때의 은사님과 연락을 하는데, 이걸 보여드리면 뭐라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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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초기 시절 쓰던 일기 (분명 버린 줄 알았는데..) - 저 때부터 영어로 일기를 쓰는 버릇을 들였던 것 같다... 영어 실력이 늘긴 했지만, 한글 실력은 그대로인 것 같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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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찾은 물건들 - 동생과 나의 백일 사진, 상장, 사진, 문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중한 추억들... 앞으로 잘 보관해야지...

어린 시절의 일기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고 (그 내용들은 정말 아무리 읽어봐도 황당할 따름...),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문집에 쓰여진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나지막히 불러보며 그들과의 추억을 어렴풋이나마 떠올려 본다.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런 걱정 없이 세상을 살았던 것 같은데... 물론 연평해전과 같은 참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기록은 없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삼풍백화점' 이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곤 하지만, 그 때는 그 잠깐의 '묵념' 보단 친구들과 뛰어 놀기에 더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으니... (한 일기에는 "그 놈의 IMF 때문에 내 생일 파티를 작년처럼 하지 못했다" 라고 써 있더라... IMF보단 생일 파티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사고란...) 지금의 어린 아이들은 우리가 신경쓰고 있는 나라 안의 이슈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10년 후 지금 쓰는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알게 되겠지...

화창한 초 여름날 늦은 오전 발견한 정체 불명의 검은 쓰레기 봉투는 그동안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망각한 채 어린 시절의 추억이 흐르는 강을 한참 동안 헤메이고 나니,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 그 당시에는 평생 간직할 것만 같았던 즐거운 감정들이, 이제는 모두 퇴색하고 '이땐 이랬지..' 라는 메마른 기억만이 남아있으니... 아마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면 지금 느끼는 이 아련함 마져 잃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오늘은 옛친구와 연락을 해봐야겠다 -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향수가 모두 희석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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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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