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 맘 때 즈음, 갓 군대에서 전역한 저와 저보다 2년 먼저 전역한 제 형제라고도 할 수 있는 친구는 5년여간 서로 꿈꾸며 그리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못씻고 못먹어도 맛있는 맥주는 모두 섭렵해 보리라 마음먹고 떠났던 여행... 덕분에 참 지저분하게(?) 다녔던 추억이 다분한 여행이었죠.
사람들에게 줄 기념품이나 선물들은 여행하던 지방 역에서 줏은 작은 조약돌 몇 개(-_-;;;)로 대체하며 다니던 그런 시기에, 저와 제 친구가 가장 큰 돈을 지출한 것은 다름아닌 당시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입었던 검은색 유니폼이었습니다.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으로 수놓여진 글씨, 그리고 간간히 들어간 붉은 수실의 테두리에서 나오는 그 위엄(?!)은 저와 제 친구의 혼을 빼놓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참고로 전 축구랑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 4년에 한 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게 전부이고, 아버지랑 동생이 프리미어 및 챔피언스 리그를 볼 때 전 옆에서 열심히 졸죠;;;
흰색도 깨끗하지만.. 검은색이 더 매력적!
아무튼 이 유니폼은 당시 독일을 싫어하는 팬들에게 "나치의 SS친위대의 디자인을 닮았다" 라며 조롱아닌 조롱을 받았지만,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아디다스사의 진품은 물론 모조품마저 어른 사이즈를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었습니다. 게다가 월드컵 초도 아니고 월드컵이 막바지에 다다르는 상황이어서 그 상황은 더욱 심각했었죠.
오른 가슴에 번호가 새겨집니다
처음 들른 도시인 쾰른(Koln / Cologne)에서 시작해서 잠깐이라도 기차가 멈추고 환승에 시간이 있다면 그 도시의 아디다스 및 스포츠 용품 매장을 찾아 발품을 팔았었습니다.유럽의 땡볕 무더위도 무릅쓰고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것이 효과가 있던 걸까요? 결국 독일의 북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Hamburg)의 아디다스 매장에서 우연찮게 진열대에 20여벌의 검은 유니폼 상의를 발견하고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유니폼에 번호와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직원이 출근하려면 1시간이 남았고, 이름은 새기려면 1시간여를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 시간을 확인하니 열차는 떠나기 40분전 T^T
눈물을 뒤로하고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가면 당연히 있을 것이다!" 라는 희망을 품고 떠났는데... 희망은 희망일 뿐 보이는 건 깨끗한 흰색의 유니폼 뿐 검은색은 아예 씨가 말랐더군요;;; 유니폼 입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검은색은 못구했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구요.
그 때 포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근데 지름신이란게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다른거 다 포기하고 맥주만 즐기는 나름 삽질 여행을 하고 있는데, 저 정도는 챙겨가야 그래도 "이건 유럽, 그 것도 독일에서 공수해온 진본임!" 하며 자랑질 할 게 생길거라는 몹쓸(?) 생각이 여행내내 떠나질 않았습니다.
7월 초에 함부르크를 떠난 후 어느 덧 한 달이 지나 7월 말 - 유레일 패스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당시 저희는 "유럽에 왔으니 유럽의 지붕정돈 봐 줘야지!" 하고 즉흥적으로 여행 경로를 틀어 스위스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정된 계획에 의하면 프랑크푸르트(Frankfurt)를 거쳐 짐을 정리한 후 프랑스로 향해야 했었죠. 하지만 친구와 제가 생각하던건 함부르크에서 놓친 검은색 유니폼...
결국 저흰 함부르크에서 제대로 된 맥주와 오리지널 햄버거(햄버거는 함부르크에서 선원들에 의해 파생한 음식입니다)를 못먹어봤다는 핑계를 대고 스위스 취리히(Zurich)에서 함부르크행 야간열차를 끊습니다 @_@;;;;
다음 날 아침 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아디다스 매장으로 달려갔는데, 저희가 기억하던 진열대엔 아무 것도 없더군요.
한 달 사이에 안팔린게 웃긴일이라며 포기하고 나가기 일보 직전, 여기까지 야간열차 타고 온 게 너무 억울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 하나로 한 번 더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했죠.
근데...할렐루야!!!!!!!!! 2층 흰색 유니폼들 사이에 누가 숨겨둔 듯 검은색 유니폼 S, L, 그리고 XL 딱 3벌이 있더군요. 정말 약 3초간 유니폼 들고 멍~ 한 표정을 지었지요 ^^;;;
저흰 각각 L과 XL을 집어들고 카운터로 가서 이름프린팅까지 부탁했습니다 - 전 13번의 뮬러, 친구는 7번의 슈바인슈타이거. 아침에 서서히 속력을 줄이는 열차에서 일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긴장감이 그제서야 풀어지더라구요.
웃긴건 저희가 계산을 끝낼 무렵 저희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들 몇명이 들어오더니 저희가 유니폼을 찾은 곳을 계속 뒤적이더군요. 저흰 승자의 웃음(?)을 그들에게 슬쩍 보이며 매장을 나섰죠.
"원하는 유니폼을 구하려면 나라 한 바퀴 정도는 돌아야지!" 라 외치면서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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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