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보통 미국에서는 여러 국가적 기념일이나 명절등에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습니다. 미국의 추석이라 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은 11월의 넷째주 금요일, 현충일과 동격인 Memorial Day 는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이런 식이랍니다 - 덕분에 해가 지나도 항상 달력에서 빨간날이라죠 ^^;;;;;

하지만 이 중 예외가 되는 몇 안되는 날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매년 7월 4일, Independence Day라 불리는 독립기념일입니다. 모 영화의 제목으로 잘 알려진 날이죠. 

미국 독립기념일의 시초가 되는 7월 4일은 미국의 국부들이라 추앙되는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등의 인물들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인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를 선언한 날입니다. 미국의 시초가 된 7월 4일을 미연방정부에서 국경일로 정해 매년 건국의 정신을 기리는 셈이지요.

이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 미국의 모든 도시들이 준비하는 행사가 있는데, 바로 행진 (Parade) 입니다. 이는 수도인 워싱턴DC에서 매년 7월 4일 정오 즈음해서 열리는 것이 가장 규모가 크고, 각각의 도시도 자신들의 역사과 미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퍼레이드를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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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시민단체에서 부터 시작해서 각 시대의 미국의 대표적인 캐릭터들까지 등장하는 퍼레이드 행사들에서 연도와 시기를 불문하고 항상 빠지지 않는 단체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한 이들이고요 (국가에 헌신한 군베테랑들 및 경찰/소방 공무원들). 보고 있다보면 정부와 시민단체가 참 조화롭게 어우러져 행사를 진행하는 몇 안되는 경우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역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행진과 함께 사람들이 행하는 행사들 중 하나가 바로 독립선언문을 돌아가며 낭독하는 일입니다. 이는 따로 공공기관에서 주관을 하지 않아도 민간단체나 지인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국부들에 감사하고 자신의 나라에 자긍심을 잊지 않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것은 대규모의 불꽃놀이입니다. 각 주마다 법률상 약간의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지자체들이 하늘로 쏘아올리는 폭죽 형태의 불꽃놀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도시에서 대규모의 불꽃놀이를 본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힘든데, 이 독립기념일만큼은 예외라고 할 수 있지요.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저도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본 적은 한 번 밖에 없어서 올 해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제가 사는 곳 근처의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는 예정된 불꽃놀이가 없더군요.. 하긴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시라서 그런가... 미국 내에서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진다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DC에 사는 친구들이 조금은 부러워지더군요.

미국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느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이나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때로는 이건 광신의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껴질 때도 있지요.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를 토론하다보면 자신의 주장이 무척이나 뚜렷하고 평상시에 보여주던 국가에 대한 애정과는 다른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경우 또한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강하기에 그 나라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는 것은 누구보다도 원지 않는 이들이 이 친구들입니다. 그렇기에 정치에 이견이 있을지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른이 못지 않고, 건국기념일 겪인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날에는 국가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축배를 들지요. 

이에 반해 한국은 어떤가요, 대한민국의 첫 초석이 된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광복절을 그저 빨간날로만 여기고 놀러다니기 바쁘지 않은 것이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 올해에도 100%의 확률로 광복절에 태극기 다는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표현을 제대로 안해서 그렇지 일단 위기가 오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단합을 잘 해 해쳐나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말과 행동으로 표현을 하는 것과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위기나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만 반짝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미국과 미국인들의 사고방식들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울건 배워야하지 않을까요?

미국에서 이들의 독립기념일 기념 행사들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나의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대한민국의 기원과 탄생을 자랑스럽게 축하하고 기념하는 그러한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조그마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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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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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상목표가 정해져있죠.
명문고에 들어가고, 명문대를 나와서, 남 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는 것.
덕분에 학생들의 진학률 및 취업률이 명문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 (천만년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지요) 라는 말이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그 교육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뀝니다. 지속성도 없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터져나온다 싶으면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구멍을 메꾸기에 급급한 실정이죠. 이러한 기형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는 사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제가 한계에 다다른 듯 합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으니까요. 사회의식이나 도덕성을 갖춘 학생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이번 고려대 의대 학생들 경우만 봐도 그렇죠), 대학교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일종의 지렛대로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얼핏 듣기로 한국은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참 경이롭고 대단한 일이죠. 그만큼 고등교육에 대한 학구열이 높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한 일입니다. 학문의 본산인 대학이 그저 고등 교육의 연장선처럼 바뀌어간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사회가 발전하고 모든 분야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어지는 만큼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등록금을 위해서 밥먹듯이 학교를 휴학해야하고, 심지어는 용역(?) 및 유흥업소까지 전전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일까요? 물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옳다고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 그들을 몰아가는 현실에 우선 1차적인 책임이 있겠죠.

지금 당장 정치권 및 사회의 최고 이슈인 "반값 등록금"이라죠. 물론 반값등록금이 실현이 된다면 좋겠지만, 이가 완벽한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국고에서 지원을 하는 돈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시장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물가인상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나 할까요...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국공립 대학들에 지속적인 투자 및 관리를 하면서 사립 부럽지 않은 양질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물론 국가 및 지자체에 의해 재정적인 뒷받침 속 투명하고 공개적인 운영은 당연한 일이구요. 동시에 타국가에서 싼 학비에 양질의 교육을 받으러 국공립 대학에 진학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선 등록금을 몇 배 이상 받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국민이 주인인 국고로 운영되는 학교니까요.

공립만 지원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차갑게 말하면 사립대학교들은 스스로 살아남게 놔둬야 합니다. 사립학교가 높은 학비를 자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그들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만큼의 학비를 요구하는 것이겠지요. 지금 당장은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재학생들에게 등록금 지원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사립대학들에 대한 지원은 점진적으로 줄이며 그를 공립에 투자하는 것이 옳습니다. 

무엇보다 사립대학출신들을 국공립출신보다 실력이 있다고 색안경을 끼고보는 사회적인 풍토에 가장 큰 문제가 있지만, 이는 공립대학들의 질적인 수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된다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공립학교들이 뛰어난 학문적 성과 및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한다면, 사립은 그저 선택의 대안으로만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저 개인적인 제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는 식의 미봉책은 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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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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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운영하는 블로그이다 보니 민감한 시사 분야나 정치적인 견해가 들어나는 포스팅은 아예 안하는 편이지만 (예전에 광우병 사건 당시 좀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 말이죠;;),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미국인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큰 이슈였던 만큼 이 곳의 친구들과 지난 이틀간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 후 제 생각을 좀 정리해봤습니다.

어렸을 적 남아있는 순간순간의 기억 중 하나가, 추운 겨울 날 조부모님과 친척들의 시선이 뉴스에 집중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환호를 외치던 기억입니다. 나중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 것이 91년 겨울 소비에트 연방의 최종 붕괴 소식을 알리던 뉴스였단 걸,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중계에 관여되어 있었단 걸 알게 되었죠. 

바로 그 1991년의 겨울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어지던 냉전이 종식되는 순간이자 동시에 통칭 '팍스 아메리카나' 라 불리우는 미국의 전성시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죠. 약 10여년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였고,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나라는 "세계 평화"를 위해하는 세력으로 간주되어 파멸을 맞이했죠. 그러던 미국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입힌 사건이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테러입니다.

당시 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던 뉴욕의 상징과도 같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대변하던 미국방성 '펜타곤'에 가해진 이 테러는 물질적인 피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크나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로 처음 직접적으로 받은 공격 인데다, 미국의 본토에 가해졌다는 사실때문이지요. 이는 미국의 국제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되고, 미국인들의 인식 또한 크게 바뀌게 됩니다. "공산주의자 = 적" 이라는 보편적 인식이 사라진 이후 "테러리스트 = 적" 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심어졌죠. 


빈 라덴의 사살소식이 자정 즈음 전해진 이후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를 통해 많은 미국인 친구들이 지난 10여년간 지속되어 온 "테러와의 전쟁" 에 큰 전환점이 생겼다는 점에 환호하고, "우리가 드디어 해냈다" 라는 벅찬 감정을 드러내더군요. 오바마 대통령 역시 담화문에서 "세계는 이제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 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말 세계는 더 안전해졌을까요?

많은 미국인들의 바라듯 테러와의 전쟁이 종식되었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현재와 같이 개입을 할 명분이 줄어들고,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떠날 필요도 없어지겠죠.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미국은 리비아 사태에서 제한적으로만 개입할 것이며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인들이 말하는 90년대와 같은 평화의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떠오르는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공식적으로 반발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고, 실제로 G2 라 불리는 단어가 공공연히 쓰이다는 점에서 미국도 중국을 또다른 슈퍼파워 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시장과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견제합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너무나도 교묘한 위치에 놓여진 우리 대한민국은 참 애매한 입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성장하는 국제 무대에서의 중국의 위상과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패권을 지키려하는 미국,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 인 미국의 영향력이 서로 충돌하는 틈바구니에 끼인 셈입니다. 북한과 남한은 결국 이 두 초강대국의 판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가능성이 크고, 현재 중국의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해군이 대양 함대를 거느리고 태평양까지 진출하는 날에는 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겠죠. 

오바마 대통령이 담화문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말을 합니다. 

"... but tonight, we are once again reminded that America can do whatever we set our mind to. That is the story of our history, whether it's pursuit of prosperity of our people or the struggle for equality for all our citizens, our commitment to stand up for our values abroad, and our sacrifices to make the world a safer place"

앞으로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제시해주는 셈이지요. 좋게 해석하면 '세계 평화를 위협하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로, 나쁘게 해석하면 '우리 국익을 위해하는 세력을 가만두지 않겠다' 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이런 상태에서 현재 인권을 필두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과 미국이 타협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인권 문제는 그저 넋두리일 뿐입니다. 정말 인권이 문제라면, 왜 중국보다 더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북한이나 아프리카 및 중동의 국가들에 별다른 제지를 안할리가 없으니까요. 결국에 이 두 국가들은 지금 자국의 흥망성쇄를 걸고 물러설 수 없는 데스매치를 벌이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제 2의 냉전이 시작되는 상황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마치 90년대 이전 서독과 동독으로 대표되는 사실상 유럽을 동서로 나눈 전선과도 같은 상황이 대한민국에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죠. 세계의 패권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두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니까요. 


중국과 미국이 사이 좋게 지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너무 극단적인 시각이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현재 중국과 미국의 사이를 보면 그 둘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친구다~" 하며 룰루랄라 거리는 모습은 마치 북한의 김씨 일가가 내일 아침 "지금 바로 통일하자, 인민들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다" 라는 말을 꺼내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종종 하는 말이긴 하지만, 전 이스라엘이 참 부럽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며 안보가 걸린 상황이면 좌우를 떠나 한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말이죠. 대한민국이 그저 역사 속에 존재했던 한 국가로 남길 원하는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그 훗날 어느 나라들 사이에서든 살아남기 위해선 국가가 힘을 길러야하고,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네, 정치 이야기나 국제 정세 이야기 따분하고 심심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소한의 관심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자주 보여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차라리 이런 고민을 상대적으로 적게 할 수 있는 다른 위치에 대한민국이 존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가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고 평가했지만, 국제 관계는 오히려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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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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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흥분이 되서 잠도 제대로 안오네요.
시험이 눈앞이고 바쁘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냥 쉽게 못넘어가겠습니다.
그 일본 친구도 친구지만, 그 친구에게 독도를 논리로 넘겨 줘 버리다시피한 저...
정말 비참하고 한심해서 화까지 납니다.

사건의 발단은 제가 그 일본인 친구의 차를 얻어타 휴대폰 대리점에 다녀오는 길에 일어났습니다.
제가 차가 없고,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나서 급하게 새로운 핸드폰을 마련하여야 했는데 (미국 생활하면서 차 없으면 걸어다니기라도 하지만 핸드폰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침 요번 학기 도서관에서 종종 마주치면서 알게된 일본인 친구가 자기 마땅히 오늘 저녁에 할 일 없으니 도와주겠다네요.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임시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고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Hey LJ~ 왜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을 별로 않좋아해?"
"응? 뭐... 일단 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잖아.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사과를 안했잖니"
"음... 그런가? 

뭐 그냥 얘도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모르는 일본애다 싶어서 임진왜란 당시 기록된 만행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신대 할머님들 문제들까지 포괄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해주고 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제가 '독도' 이야기까지 꺼내버렸죠. 근데 다른 이야기 도중에도 갸우뚱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독도? 아, 다케시마? 근데 그건 한국사람들이 확실히 잘못알고 있잖아?"
- 여기서부터 살짝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
"Misunderstanding??? 야, 몇백년 전부터 한국 고유 영토였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할아버지에게 듣기론~"

자신의 할아버지랑 학교에서 배웠다고 말하며 말하는데 이건 뭐 거의 전문적으로 세뇌를 받은 듯 싶네요. 녀석이 말하던 몇몇 굵직한 주장들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독도는 조선 왕조가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않던 무인도였다
2) 한국이 합병되기 이전 1905년에 독도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일본령이 되었다.
3) 패전 이후 일본령이 아니라고 명시된 섬들 중에서 독도는 없었다.
4) 국제 재판소로 가져가지 못하는 까닭은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으니 빼는거 아니냐?
 

군대 있을 당시 받았던 수많은 정훈교육 (정신교육 비슷한겁니다) 중 독도에 관한 내용을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며 반박에 나서려 했는데, 이건 녀석의 주장을 그냥 무조건 너네가 잘못 교육받은거다라며 부정만하는 꼴이 되더군요.

화가 나다보니 혀도 꼬이고 말도 꼬이고 하니 소통은 더 안되고, 결국 저도 녀석도 흥분.
급기야 집까지 남은 5분여 거리에서 신호등에 차가 멈췄을 때 무작정 차에서 내려서 걸어왔습니다. 그 녀석도 화가 단단히 났는지 (제가 결국 너네 할아버지와 선생이 잘못가르친거라고 소리를 높였거든요) 도로에서 내리를 저를 말리지도 않고 그냥 쌩하니 가버리더군요. 

집에 오면서 화를 억누르며 생각을 해 봤는데, 결국 제가 진 판국이더군요.
어떻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논리적으로 끝까지 맞서서 녀석을 먼저 굴복시켜야 했는데...
제 논리를 뒷받침해줄만한 최소한의 지식조처도 부족했다는게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죠.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역사적인 자료를 모두 상시 외우고 다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너무나도 대한민국 측의 자료가 방대하더군요. 그래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미약하게나마 공부해 보았봤습니다.
 


- 한국은 1400여년 부터 300년 이상 독도를 비워둠으로서 실효적 지배를 포기했다.

—> 조선왕조가 독도를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시행한 것은 사실이나, 이 정책의 본 의도는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행한 것이지 섬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도정책' 을 시행함으로서 '위험' (여기서 위험은 누굴까~?) 으로부터 지키려한 노력은 '영유권' 의 실현행위이며 이 정책을 지키는 와중에도 정기적으로 관직자를 파견하여 관리했다.

- 1905년 합법적 편입령을 통해 독도에 대한 원시적 권원을 확정적 권원으로 대체했다.
—> 국제법은 고유의 영토를 국제법의 변천에따라 한 국가의 영토를 확인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본은 독도 이외의 다른 어떤 섬에도 '편입령' 을 내려 자신들의 영토에 귀속시킨 경우가 없다. 또한 1910년의 공식 합병 이전에 앞서 일본은 대한제국을 협박과 무력으로 불법 점령, 실질적인 주권 약탈을 하였다. 1945년의 포차담 선언과 카이로 선언에 의해 협박과 강요로 약탈된 영토는 모두 반환되었다.
 

- 패전 이후 독도는 반환 섬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독도를 주한미군정에 이양했다. 최고사령부는 또한 일본이 독도의 12해리 이내 수역으로 접근 금지명을 내렸는데, 이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확인한 것이다. 일본 주장대로 연합군의 결정이 일본의 관할권에 대한 정책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왜 일본이 독도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했는가?

- 국제 재판소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는게 찔려서 뺀다?
—> 그럼 너희는 중국이 센카쿠 제도를 국제 재판소에 가져가자면 가져갈거냐? 엄연한 자신의 땅인데 칠칠맞은 옆집 애들이 자기거라고 우긴다고 해서 굳이 이웃간 분쟁거리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출처 : 해양경찰청


대한민국 군인들도 아니고 엄연히 '경찰' 이 있는 우리나라 영토인데...
에휴...
하여튼 욱하는 제 성격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간만에 참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해도 말이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면, 일단 흥분은 가라앉히고 조목조목 설명해줘야겠습니다.
오늘같은 개망신 당하는 일 없도록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건 현장에 녀석과 저 밖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제게 와신상담의 기회가 주어졌단 점이네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오늘 독도를 지키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ㅜ_ㅠ...

P.S. 자세한 자료가 해양경찰청쪽에 좀 많더군요. 한 번 시간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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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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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국적 포기 어렵게 하자 국적 포기자 더 늘어 ]


간만에 무척이나 씁쓸한 기사를 하나 읽었네요. 요즘들어 세계 곳곳에서 좋지 않은 소식들이 전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자주 들긴 합니다만, 이 기사는 안타깝다 못해 씁쓸한 마음까지 듭니다. 네이트에서 읽은 기사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국적이탈 조치를 까다롭게 만든 개정법이 발효되기 전에 '간단'하게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 복수국적자들이 몰렸다는 내용입니다. 법무부 측에서는 한국 국적에 대한 애착을 기대하고 국적이탈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다는데, 오히려 까다로워진 국적이탈 개정법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이 배로 증가시키자 무척이나 당황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국적 포기의 이유에 대한 정확한 추적은 힘들지만, 병역기피 및 외국인 학교 진학 등의 이유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말이 '파악'된다는 거지, 솔직히 그 이유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남성의 경우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군에 가지 않아도 되니 20대 초반의 2년을 고스란히 자기가 관리하며 쓸 수 있고,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거나 해당 시민권이 있는 나라의 국가로 유학을 갈 경우 ('유학'이란 단어가 올바른 선택인지 살짝 고민이 되는군요) 상당한 혜택이 생깁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국적'을 바꾸기만 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 모든 혜택들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랐으며 한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저런 혜택들을 위해서 국적을 버린다는 것이 솔직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자신의 가족의 터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 있고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 국적 포기를 신청하는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그런 상황에 있을까요? 그저 한국에서 한국 국적의 이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의 유혹에 견디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 아닐까요?


미국서 학교를 다니는 와중 알게 된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다들 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 몇몇은 '한국인'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한국 문화를 즐기며 한국 음식을 좋아하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 한국인' 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실상 알고보니 한국 국적을 포기한 '외국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그들이 '외국인'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그들이 '외국인' 이란 것이 표면상으론 전혀 들어나지 않는데다가, 그들 스스로도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소개를 하니까요.


한국 내에서, 혹은 한국인 사회 내에서 '한국인'을 규정하는 가장 큰 잣대는 결국 외형적인 특징들인가 봅니다. 일단 외형적인 모습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기준에만 맞으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호감이 생기니까요. 반대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외형적인 면에 있어 전형적인 한국인의 기준에 들지 못하면 배척받는 경우를 아직도 종종 우리 사회 내에서 접할 수 있죠. 합법적인 한국인으로서 모든 의무를 이행하는 성실한 국민이지만, 사회 내에선 항상 주변만 겉도는 이방인으로 남겨지는 셈입니다. 종합해보면, 결국 우리에게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적'은 외형적 기준에 비해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겉모습만 한국인일 뿐이고 그 적은 외국에 있는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처럼 취급받으니까요.


한국 사회는 우선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 혹은 국민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시민 / 국민은 사회 /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주체를 말합니다. 헌데 외적인 특징이 다르다고 해서 그 권리를 암암리에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게 과연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반대로 외적인 특징이 같다고 해서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이가 같은 권리를 제공받는다면 이는 옳은 일일까요? 이는 결코 옳지 못한 현상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올바르게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도태되어 나갈테니 말이죠. 그렇다고 한국에서 뻗어나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교포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은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을 존중해주기에 앞서, 합법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국민들부터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일이 옳은 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적과 다른 국적 사이에서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나중에 자신이 필요할 때 "나는 한국인이야!" 라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국적이나 권리를 요구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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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남들에 비해 군생활의 특별한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2년간 한 일이라곤 반복되는 5주간의 교육이었으니까 - 한 기수가 지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수가 오고, 같은 일상은 매번 반복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조로우면서도 길게만 느껴질 것 같은 5주라는 시간은, 떠날 것을 알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는 이들과 함께 할 때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처음 훈련소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불안함과 고독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강압적인 교관과 조교들과 함께 앞으로 5주를 어떻게 버텨나갈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같은 나이또래의 조교와 개인면담을 하다보면,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건 90% 이상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단련이 된 조교들 중에서도 종종 자신을 추스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군에 온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질 정도로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이가 오히려 너무도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냉정하고 침착해야하는 조교들이나 교관들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심장이 무척이나 좋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오래 뛰지도 못하고, 체격은 내 절반도 안되는 왜소한 체격. 면담 전 개인신상을 살펴보니 어린 나이에 심장 수술을 받은 경력도 있다. 어떻게 이 친구가 군에 오게 된 걸까 하고 갸우뚱하며 넌지시 물어봤다. 굳이 군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냐고. 담담한 듯 말을 꺼내는데,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자기 자신 세명이서 사는데, 근래에 들어서 집안 사정이 무척 힘들어졌다고 한다. 자기 약값만으로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그래서 집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면서 자기 건강도 찾고 싶어 입대를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무척이나 굼떠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훈련소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게으름을 피우나 싶어서 정신 좀 차리게 해줘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이들에 비해 정신적 지체가 있는 친구였다. 혹시나 싶어 부모님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한 번 드려봤는데, 아들 이름만 들어도 울먹거리시는 어머님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불안함이 느껴졌달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정신적인 질환쪽으로 아직 선례가 없는 경우라서 군복무를 피할 수 없는 친구라고 한다. 군의관도 안타까워했지만, 방법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랴? 남은 기간동안 최대한 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저 두 친구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정말 굳이 이런 친구들을 현역으로 써야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들이라면 모두 공평하게 수행해야하니까.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니 제주도 근처에서 침몰한 고속정에서 병사 1명이 사망하고 부사관 1명과 이등병 1명은 실종되었다고 한다. 2010년은 우리 해군에게 있어 무척이나 잔인한 해인 듯 싶다. 그들 각자에게도 소중한 삶과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고, 그들만의 꿈이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스에 또 다른 한 명의 이름이 올랐다. 그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이제 대중이 원하는 길을 가겠다고 밝히는 그 사람... 그래,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사연이 무엇이든 많은 이들에겐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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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블로그?!

From U.S. 2010. 10. 26. 05:20
요즘 이상하게 티스토리의 접속이 원활하지가 않습니다. 뭐 한국 도메인이니 약간 느린 것은 이해하겠지만서도, 아예 접속조차 안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꾸 여기다 사진을 올려서 트래픽 발생때문에 학교에서 임시 차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아무 이상없이 접속되는 것을 보면 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 사이트는 거의 접속이 불가능한 정도?)

티스토리에 들어오질 못하니 좀 답답하기도 하고 해서 약간의 외도(?)를 했답니다. 08년에 구글 계정과 연동시켜놓은 blogspot 블로그를 살리는 일을 해봤답니다 -_-;;;; 


원래 블로그를 시작한 취지가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려보고픈 의도로 시작을 한 것이었는데, 영문 글 작성의 압박에, 그리고 티스토리의 매력에 눈이 멀어 그냥 잊혀진 블로그였답니다. 그런데 티스토리 접속이 불가능하게되니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더군요... 

일단 시커먼 배경화면과 우중충한 분위기부터 나름 상큼하게(?) 바꿔보았습니다. 당시 군입대 전이라 뒤숭숭한 제 마음이 블로그 생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더라구요. 무언가 우울한 분위기가 스멀거린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살펴보니 가장 최근에 포스팅한 글이 08년 5월에 적어둔 것이더군요... 하긴 티스토리로 이전하고 나서 찾아가보지도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일단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글들도 하나하나 지웠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과 당시의 제 생각이 어긋난다면 과감하게 지웠죠 - 어차피 티스토리 블로그에 다 옮겨둔 글들이니까요. 

한시간 정도 손보니 이제 좀 블로그같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무엇을 주제로 운영을 해볼까 하다가 (솔직히 티스토리 블로그는 좀 잡다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뚜렷한 주제도 없고해서;;;)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한 목표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대해서 알릴 수 있고, 유학생으로서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시선 (미국애들 생각보다 꽉 막힌 애들이 많습니다) 등등. Facebook이랑 연동하면 나름 미국친구들이 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시험공부 하지 않고 했답니다. 

그런데. 

티스토리가 다시 됩니다 -_-

영문블로그...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대로 그냥 표류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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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복학생이라서 그런걸까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 남학생들의 대부분이 아직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친구들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만나기만하면 군대이야기만 물어보네요 "형 / LJ, 군대는 어땠어?" 

솔직히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를 풀자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오늘은 한국군대 이야기보다는 이 곳, 미국서 접하는 군인들에 대해서 약간 말하고 싶습니다.



제 주변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ROTC가 2명 있습니다. 한 명은 해군 소속이고, 다른 한 명은 해병대 소속이지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들은 1년 후 정식으로 임관을 하겠지요. 그 중 해군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 왜 굳이 다른 길들을 놔두고 군대를 택했느냐는 질문이었죠. 그 친구는 제게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려주었답니다.

1. 리더쉽의 습득
2. 최신 기술을 이용 / 수학하며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음
3. 군인으로서 얻는 자부심과 혜택
4. 국가에 대한 보답

1번과 4번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2번과 같은 경우에는 '미군'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나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실제로 미군의 과학과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실제로 매년 열리는 학교 주관으로 열리는 Career Fair 에 가보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함께 각 군의 모병담당관들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답니다. 



미군으로서 가지는, 혹은 군에서 전역 후에 지급되는 혜택의 기반은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제정된 G.I. Bill 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아서 제가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보면 군대가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정부 지원 혜택들이 있습니다. 학자금 전액 지원이나 의료보험 제공, 혹은 주택 마련 지원 등 정부에서 따로 부서 (Department) 를 만들어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니까요. 

한국은 어떤가요? 전역 / 제대 군인들한테 그러한 혜택이 있나요? 말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죠. 얼마 전 뉴스에서 보니 전역군인들 중 부사관이나 위관급은 진급못해 전역하면 정말 낙동강 오리알 신세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던데...

물론 '모병제'로 운영되며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해주는 미군과 '징병제'에 빈약한 재정이 뒷받침해주는 국군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미국 친구들은 (비록 징병제라도) 제가 국가에 2년간 군인의 신분으로 있었던 사실을 알면 가장 먼저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너 정말 자랑스러웠겠구나!" 혹은 "네가 학교에서 떠나 군인이었던 2년이 자랑스럽지 않니?" 뭐 이런 식의 말들입니다. 비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말해줍니다. 전 이런 말에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죠.

꽃피는 화창한 어느 봄날...


전역 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제 큰 장애물 하나 넘었네" 라는 말이었습니다. 네, 하고 싶은 것 많고 해야하는 것 많은 20대 초반에 2년간의 의무복무 - 군복무가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한국사회입니다. 그리고 군대에 '말뚝박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할 것이 없는 '잉여' 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곳 군인들은 자신의 전투복 /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또한 주변 사람들도 이들을 존중해주죠. 비단 군인뿐만이 아니라, 경찰에서 비롯해 소방관까지, 사회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그에 걸맞는 사회적 대우를 해준답니다(100% 그렇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요, 고마워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큰 생각없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군대다녀와서 학교로 돌아오니 예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사실 이 글은 이런 의도로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흘러가버렸네요. 

에휴... 여기서 푸념해서 뭐하겠습니까, 시험이 이틀 전인데 -_-;;;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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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기억들

OPs 2008. 6. 15. 10:50

2002년 6월 13일, 대다수의 국민이 월드컵의 열기에 흠뻑 빠져있을때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두 명의 여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효순양과 미선양.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지났고, 지난 6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효순, 미선양을 위한 추모의 촛불들은 6월 13, 14일을 기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이름이 6월 13일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죠. 미국과의 외교 문제나 주한미군과 관련된 문제들이 있을때마다 인터넷 뉴스나 게시판에서 그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꽃다운 어린 나이에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군대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안타깝고, 억울하고, 또한 애석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들을 추모하고 미국과 미군을 규탄하는 촛불들을 볼때면, 가끔 이해가 안가는 사실이 하나 있다는게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6월 6일, 6월 10일, 6월 13일, 6월 15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6월 29일. 이 날들이 모두 어떤 날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6월 6일은 현충일이니 그렇다 치고, 6월 10일은 민주항쟁이 있었던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죠. 그리고 6월 13일은 지난 6년간 효순, 미선양에 의해서 몇번이고 상기된 날이라 하면... 남은 두 날짜들은 앞의 세 날짜들에 비해 아는 사람이 크게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먼저 6월 15일 - 시사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남북 정상사이에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날이란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기 1년 전 같은 날에 연평해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솔직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평해전 자체를 알고 있는지조차 궁금합니다. 그 사건 이후 해군은 북한해군에 압도적인 '대승'을 거뒀다는 이유로 여론에서 '살인자 해군'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니까요. 어찌되었든 마지막으로 남은 6월 29일. 이 날에 대한민국 해군 장정 6명의 목숨을 앚아간 서해교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그리고 박동혁 병장.
북한 해군의 계획적인 기습공격에 모두 이렇게 6명이 전사했고 19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들 모두 젊은 나이의 건장한 청년들이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영해수호의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몇이나 되나요? 지난 6년간 효순, 미선양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촛불은 보았어도,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위로하는 촛불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단지 '군인'이라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분들이라서 이들의 희생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가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미군의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 미선양이나, 북한의 우발적인 도발에 무참히 '살해'당한 저 6명의 장병들 모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밖에 안보이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해가 안갑니다. 효순, 미선양을 위로하는 촛불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것이 아니라, 효순, 미선양, 그리고 어찌보면 그저 개인적인 신념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시던 김선일님마저 추모해주는 촛불이 있는 마당에, 북한군과 대치 도중 순직하신 6명의 해군장병들을 위하는 촛불들은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지난 6년간 서해교전을 다루는 기사는 봤어도 북한의 고의적 도발과 북한 내의 인권문제에 항의하는 촛불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았을때, 앞으로도 서해교전은 국민들에게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그저 그런' 사건으로만 인식되겠죠.

올해에도 어김없이 효순, 미선양을 위한 촛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광우병 항의 촛불 문화제의 일부였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 곳에서 '효순, 미선아 보고싶다' 라는 구호 또한 여러번 외쳐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오는 6월 29일엔 그런 구호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남의 땅에서 효순, 미선양의 사건에 대해 '철야 훈련 이후에 일어난 실수'라고 발뺌하는 미군이 싫습니다. 그들의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그들의 잘못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효순, 미선양에 대해서는 소위 '개거품' 물면서 반응하지만 북한군의 도발로 인한 사망자들의 사건에서는 꼬리를 내리듯 사라지는 몇몇 단체나 사람들 또한 싫습니다. 아, 단순히 '싫다'라는 말보다는 '혐오' 한다는 말이 제 심정을 더 잘 표현하겠네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배웠습니다. 현 정부의 잘못과 아리따운 어린 꽃들을 짓밟은 미군을 평화적으로 규탄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전을 마련해주시고 지켜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촛불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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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 내외를 비롯한 입학 담당관 내외가 어제 한국에 도착했다.
내일 COEX에서 있을 Alumni Reception 등과 같은 주요 행사 일정에 앞서, 오늘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몇몇 선생님들을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하게됐다.

남산N타워 - 한옥마을 - 창덕궁&비원 - 인사동
이렇게 연결되는 나들이 계획을 짰는데, 생각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남산에서 전혀 계획하지도 않았던 봉화대의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었고,
한옥마을에서 평일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전통 결혼식을 우연케 보았고,
창덕궁에 가니 비원 안쪽의 연경궁에서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전통 풍류음악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걸 계획하고 찾은게 아닌데 (솔직히 대략적인 계획 이외에는 계획한게 없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시원한 바람 한점 없이 땡볕이 내려쬐던 하루였지만, 방문하는 모든 곳에서 탄성을 터뜨리던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흥이 나더라 - 내 나라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때문에 더 흥이 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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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N타워 - 봉수대지기 교환식에서 통솔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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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 전통 결혼식. 신부분인가? 아무튼 한 분이 일본국적이라 국제결혼이라고.. 그러니 더 축하해달라는 말을 들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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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조선시대 임금님이 즉위하고 외국의 사신을 맞던 주요 공간중 하나. 앞에서는 품(品) 서열에 맞춰 문무백관이 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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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인정전앞에서 절로서 예를 표하는(?) 교장 내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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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편전으로 쓰이던 희정당 뒤 대조전 (순종께서 여기서 돌아가셨다고한다)에서 궁궐의 아름다움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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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비원으로 향하던 도중 마주쳤던 한 소박한 건물 (의두각의 일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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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효명세자가 지었다는 기오헌과 의두각. 직사각의 못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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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선경당에서 김영기 명인이 여창평롱(女唱平弄)이라는 가곡을 부르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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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궁중무용중 북을 둘러싸고 마치 용이 여의주를 품은 듯한 모습을 표현하는 무고(舞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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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선경당에서 이유라씨가 지영희류 해금 산조를 연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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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 선경당에서 왕기철 명창께서 판소리 심청가를 열창중이시다. 중간중간 어설프게 도전했던 내 추임새에 망설임 없이 재치있게 대답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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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연경당에서 열리는 풍류음악제. 매주 목요일마다 10월 30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국내외 방문객들에게는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기엔 안성맞춤인듯 하다. 창덕궁의 입장료 (대인기준 15,000원)을 내면 공짜다.


사진의 숫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어떤 곳보다도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아무래도 창덕궁인 듯 싶다.
아름다운 궁궐의 풍경이 큰 몫을 했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접한 국악의 아름다움에 미국에서 오신 선생님들을 포함, 한동안 국악의 아름다움을 잊고 지내던 나에게도 크나큰 감동을 준 듯 싶다. 한가지 부끄러운 점이 있었다면, 국악에 대해서 아주 얕은 기초지식만을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 질문을 받을 때 확신을 가지고 대답못하던 내 자신의 모습이다.

현재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크나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분들에게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촛불문화제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찜찜하게 남는 하루였으나,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내 고국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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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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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Lee and the Public

OPs 2008. 6. 7. 12:27

The primary concern in last year's Korean Presidential Election was how to retrive the declining and insecure domestic economy. All candidates presented various sound plans they believed to resolve the problems in Korean society. The citizens were greatly interested in stopping the seemingly endless economic downfall and favored the candidate with experiences as a formal CEO of 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 and Mayor of Capital Seoul: Lee, Myung-Bak. Although he had many ethical flaws that formally would have not been accepted in Korean society, majority of people (who voted) chose him because they believed he was the one who has the most potential to successfully 'save' the downfalling market economy.

About 100 days have passed since President Lee took the Blue House with his administration. It may have been too short to evaluate what President Lee has done so far, but one thing is clear: he has lost many of his supporters because of his poor decisions. He lost the respect from the citizens when he 'vowed' to Japanese King (aka Emperor), caused the insecure atmosphere by increasing tension against North Korea, and ultimately erupted vigorous anger from the citizens by agreeing on the U.S. Beef importation without enough safeguard to ensure the citizens' health. Other sensitive political issues such as the expansion of private schools, the introduction of private healthcare system, and the construction of the great cannel, which pierces the half of the penninsula, are also facing many active criticizms.

Regarding the numerous rising criticisms, it seemed quite ironical that the voice of the citizens has been ignored by the government in this democratic society. A situation that the voice worrying about the danger of the U.S. Beef was disregarded by the government for more than a month indicates the government has a serious problem in terms of 'communicating' with the people. The people's discontented opinions were exchanged through internet and eventually grew as an anger, but the high officials in the adminisration didn't care much about the growing anger since it was invisible to them.  

The very first nightly candlelighting vigil has been started with the outcry of Korean high school students feared of the unsafe future regarding the U.S. Beef importation. One of them said "I want to live in safe future and I want to live in the coutry where what we learn from the textbook is right". Their young voices brought up the college students and parents to the very front of the criticizm against the government. Ever since the first vigil, there have been more than 25 consecutive nightly candlelighting vigils with the more participants so far. Some people say the protesting crowd does not represent the will of the entire citizens in the country. If the cause were not righteous, however, a large crowd against the administration would not have gathered to express their will. The continuing nightly candlelighting vigils and voices of thousands of attendees thus have a significat meaning at this point to President Lee's administration, as a serious warning.

President Lee has been in the office only for about 100 days, but he has lost more than half of his formal supporters already. The president and the administration are now trying to fix their mistakes, but what they really need to learn is how to respect the different voices of the citizens and listen to them. They should realize that they are living in a country with the name of 'Republic', and know that they would face harsher reactions from the public in future, if they make another mistake caused by their miscommunication with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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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having a great interest on the protest against the deangerous U.S. Beef im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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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asking for comments from the local people


급하게나마 몇자 적어서 BBC에 보내봤습니다...
The following is the comment I have sent:

I'm a college student at University of Michigan in the United States. As one of Korean citizens, I have attended the Nightly Candlelight Vigil in Seoul on May 31st to protest against the government's decision to resume the U.S. Beef import. As many of Korean citizens have witnessed already, the citizen protesters maintained the principle of non-violence throughout the entire night regardless of the reaction from the police. Many citizens now blame for the police because of their violent crash against the peaceful civilian protest on May 31st, but I must say that the combat police is not there because they want to block the citizens in their will. In Korea, because the country is still technically on the war againt the North Korea, the young male citizens are required to take a two-year active military service. The combat police consists of some of those young males who have been deployed for the military service. When I was participaiting to the protest, I faced the combat police who's in the almost same age with me and could read the 'unwillingness' from their eyes. Though some brave citizens may call me a 'coward', I couldn't protest against those young combat police anymore when I confronted them face to face. The reason I'm back in my country is to fulfill my duty as a Korean male citizen and I will be starting my service within a month from now. However,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I may be deployed as a combat police like those young men blocking the citizens right now. They know that they will be one of the first ones exposed to the imported U.S. Beef, which has a high potential of carrying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ut they have no choice other than obeying the order from the above - when I thought of those conditions while confronting the police in my age, I couldn't fight against them. All the conflicts and tragedies happening in Korea right now is all because of the decision that counters the will of the citizen. Why don't President Lee and the government listen to what people want? There already have been more than 24 nightly candlelight vigils in Korea. However, the government did not respond to the outcry of the worried/angered Korean citizens. The further the government ignore the citizens, the more blood between the young police and the protesters would stain the earth. I hope President Lee would listen to the small wish that majority of Korean citizens have in their mind now: the safe future for our next generation. The nightly candlelight vigil would be continued until that moment.

미숙한 내용이지만... BBC가 현 한국사회의 괴리를 알아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저 내용 그대로 미국 Social 사이트인 Facebook과 Digg등에 옮기는데... 좀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가지고 장난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P.S. BBC 소식을 접하게 해주신 작은겨자씨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BBC는 자주 읽지 않는 관계로 그냥 지나칠뻔 했네요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248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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