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기 전에 알아두면 편한 습관들에 이어 오늘은 훈련소 밖에서 애타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가족 / 친구 / 애인들을 위한 일종의 팁(?)을 작성해봅니다. 지금 훈련받는 장병이나 곧 입대를 앞둔 지인을 두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뭐 안에서 보내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보내는 건데 굳이 알아둘게 있느냐' 라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충남 논산에 위치한 육군훈련소는 다른 교육기관들과는 다른 태생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크기"죠.

훈련소 본부의 직할대들을 제외하고서 7개의 교육 연대가 위치한 육군훈련소는 국내 최대, 아니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게 자랑거리일지는...;;) 단일 교육기관입니다. 연간 12만여명이 거쳐가고 하루 교육받는 인원 평균이 만여명에 달하는 메머드급 부대지요.

덕분에 편지 수발에 있어 종종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훈련병에게만 편지가 오는 것도 아니고 이 곳 저 곳에서 훈련소 내로 오는 편지들을 모두 합하면 그 양이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간에 가끔 편지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특히 여자친구에게 줄편지를 받던 훈련병은 분대장에게 의문을 제기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86번 다음 87번 88번 편지가 없고 89번이 왔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ㅇㄹㅇㄹㅈ...

그래서 훈련소에 편지 보낼 시 알아두면 유용한 DO 와 DON'T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DO! 주소와 숫자는 정확하게, 그리고 크고 뚜렷하게

군부대로 편지를 보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 혹은 ~~분대 등 모두 숫자가 들어가니까요. 훈련소는 먼저 연대로 구별이 되는데, 여기서 숫자가 잘못 기재되면 그 편지는 절! 대! 받아야 할 훈련병이 못받는다고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만약 23연대로 가야할 편지가 25연대로 간다면? 기본적으로 주소지에 적힌 숫자로 빠르게 연대구분을 먼저 하는데, 거기서 잘못 걸려지면 뭐 별 수가 없습니다. 비단 연대 뿐만 아니라 소대 구분까지는 정확히 해주셔야 훈련병이 편지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답니다. 분대장들이 착할 경우 옆중대의 편지가 잘못 온 경우 전달해주는 경우가 있긴합니다만, 그런 위험은 줄이는게 좋죠.

참고로 훈련병 이름을 잘못 적으셨다해도 번호만 맞으면 편지는 제 때 도착한답니다 ^^


DON'T! 편지에 금지품목 넣기

네... 일반적으로 편지에 무언가를 꿍쳐서 보내시는 분들 많습니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정말 자주 오죠. 가장 자주 오는 것들 중 하나가 담배 한 두 가치나 두께가 굵지 않은 껌이나 사탕 같은거 그런 것들 자주 보내시더군요. 쏠라씨랑 레모나 보내시는 분들도 종종 있고... 한두개 숨겨보내면 무사히 도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_-?

일단 편지가 오면 중대에서 행정병이 소대별로 편지들을 구별하면서 평균보다 두껍거나 조금이라도 의심가면 다 따로 빼놓습니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담당 소대 분대장이 해당 훈련병을 따로 불러 훈련병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개봉하고 편지 이외의 모든 것들은 압수하지요 - 눈코뜰새 없이 바쁜 때는 행정병들이 임의 처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품들을 퇴소하는 날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죠 (그 날도 정말 바쁘기에;;)

가끔 센스있는 분들이 "양담배" 몇가치와 함께 '조교님들 수고하십니다 - 우리 XX 잘 봐주세요' 라는 쪽지를 말아넣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담배는 절대 주지 않습니다, 사탕 한 두개 정도라면 모를까... ^^; 물론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분대장이면 어림없습니다.


DO! 편지 봉투 확실히 밀봉하기

이건 특히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아리땁고 마음씨 고운 여성분들이 종종 실수하시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대다수가 남자친구에게 편지 보내는 설렘에 내용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편지 봉투까지 아주 반짝반짝 눈이부시게 꾸며서 보내더군요.

뭐 주소만 명확하다면 도착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가끔 풀 대신 볼륨있는 케릭터 스티커 같은거 한두개로 편지 봉투의 마무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종종 훈련소로 도착하는 수많은 편지들과 뒤섞이고 나뒹굴며 손상되거나 유실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어찌어찌 봉투는 도착했는데, 내용물이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당시 훈련병 표정이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러니 편지봉투는 가능하면 규격에 맞는걸 사용해주시고, 밀봉을 제대로 해주세요 -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됩니다. 


DON'T! 등기나 소포보내기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꼭! 반드시! 봉투에 쓰라고 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등기 및 소포 수취 불가" 라는 문구지요. 그런데 편지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 문구에 신경을 쓰지 못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등기우편과 같은 경우에는 우편물의 취급과정을 세세히 기록해서 수취율을 높이는 것인데, 훈련소 지침상 간부들에게 오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부대로 등기를 받진 않습니다.

소포의 경우 편지 이외 다른 물품을 보내신다는 말인데, 원칙적으로 보급품 이외 일체의 바깥 물건을 통제하는 훈련소의 특성 상 훈련병에게 전달해 줄 수가 없답니다. 예외가 있다면 안경이 파손되어 새로운 안경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훈련병이 속해있는 소대의 소대장이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소포를 보내실 주소를 알려줍니다. 교관(소대장)이 수취하고 전달해주는 경우지요. 

가장 난감한 경우는 돗자리만한 편지와 함께 먹을거리가 잔뜩 온 경우인데... 이건 훈련 중대에 따라 취급하는 방침이 다 달라 달리 설명을 생략합니다. 확실한 건 훈련병이 편지는 받더라도 음식을 온전히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선물(?)은 자대 배치 받은 후에 해주시는게 좋답니다.


이 정도면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은 대충 적은 것 같네요. 간단하게 쓰고 끝내려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모쪼록 입대 후 모두를 위해 훈련받으며 구슬땀 흘리는 훈련병들이 애정어린 편지를 무사히 받고 힘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P.S. 친구 말대로 요점만 콕콕 집어서 간략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텐데, 정말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ㅜㅠ  

WRITTEN BY
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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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작년에 복학하고 나서 알게된 여러 사람들 가운데 이제서야 군대에 가는 어린 친구들이 다수보입니다. 그리고 저랑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택하는 대신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고 졸업을 한 친구들 가운데 뒤늦게서야 군에 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 친구들이 요즘들어 제게 종종 여러 질문을 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훈련소 분대장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물어보는 사항들도 비슷비슷하고 해서 그냥 한 번에 정리를 해주려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_-;;;

다음은 입대 전에 한 번 쯤 알아두고 시도해보면 훈련병 및 남은 군생활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는(???!!) 6가지 버릇 및 습관들입니다. 입대를 앞둔 분들이라면 조금이라도 편한(???!!) 훈련병 생활을 위한 가이드라 생각하시고, 군필자 분들은 '훈련병 시절엔 이 것 때문에 고생했지~' 라는 추억을 떠올리실 수 있을 듯 싶네요.



1.  식탁에 팔 기대지 않기 [★]

보통 입대하고 나면 열에 여덞은 어리버리한(?) 상태가 됩니다. 아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셈이지요;;; 덕분에 식사 시 지금 내 목으로 넘어가는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죠. 하지만 여기서 평상시의 잘못된 버릇이 나오는데.. 바로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팔을 식탁에 기대고 밥을 먹는 경우입니다. 

절도와 각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그 것도 훈련소에서 훈련병이 그렇게 밥먹는걸 그대로 두고보는 교관 / 분대장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그냥 호통이 확!!! 

생각보다 금방 고쳐지는 습관이지만, 군에서 적응하기도 힘든데 식사시간에 호통들으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미리 고쳐가면 식사시간이 편해집니다. 



2. 모자 (전투모) 제대로 쓰기 [★★]

사회에서는 모자를 뒤에서부터 눌러쓰죠.
군대에서는 모자를 앞에서부터 눌러씁니다. 
모자챙이 눈썹 바로 위를 덮을락 말락하게 쓰는 것이 올바른 착용방법입니다. 
이마를 훤히 드러내놓고 삐딱하게 전투모 쓰는 그대, 또다른 훈계 / 얼차려가 대기중입니다.



3. 신발 끌지 않기 [★★]

사회에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걷는지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쓸 일도 없지만, 군대에선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면 발을 맞춰서 걷는 일이 있지요. 발 맞추는 것 자체는 솔직히 눈치만 잘 보면서 하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신발끄는건 문제가 다릅니다. 이건 하도 오래 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몸에 베인 버릇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치는 것도 쉽지 않지요. 자신이 이 버릇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냥 다른 이에게 한 번 물어보면 됩니다. 만약 아스팔트 위에서 걸을 때 "칙~칙~" 소리가 난다면 100% 신발을 바닥에 끄는 타입입니다. 

신발을 끌면 않좋은 점은, (1) 흙위를 걸을때 흙먼지 작렬 (2) 전투화 뒷굽의 빠른 손상 (3) 과도한 물집발생 등이 있습니다 - 실제로 발만 끌지 않아도 물집 생기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이 외 부수적인 효과로는 교관 및 분대장들에게 얼차려를 유발한다는 점 - 아무래도 보지 않고 소리만으로 구별이 가능하니까요 ^^;;



4.  뒷짐 / 짝다리 짚지 않기 [★]

훈련병들에게 열중 쉬어 자세를 시키면 두 팔을 힘없게 내린채 엉덩이 근처에 포개어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올바른 자세는 팔을 허리 위로 올려서 팔이 늘어지지 않게 하는 겁니다. 짝다리의 경우는 체중을 오른쪽이나 왼쪽 다리에 싫은채 삐딱~하게 서있는 걸 뜻합니다. 역시 흔한 지적의 대상이 됩니다. 

훈련병 시절에 지적받는건 별거 아니라 넘어갈지 몰라도, 자대서 병생활 하는 내내 간부들에게 지적먹는 경우가 생깁니다. 병생활하면서 간부들과의 트러블은 피하는게 여러모로 좋은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



5. "~다" / "~까" [★★★]

군인을 규정짓는 가장 대표적인 습관들 중 하나지요. 모든 말은 항상 "~다" 나 "~까" 로 끝나야 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군대예절입니다;;; 평생 써 온 말투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들지만, 이리저리 굴러가며(?) 배우다보면 어느새 이게 입에 베이곤 하죠.

가끔 여기서 "나" 를 포함해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건 교관이나 상급자의 특권입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나" 라는 말을 쓴다는 것,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항목에 있어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정도가 되겠군요. 



6. 압존법 사용법 숙지하기 [
★]

개인적으로 분대장 생활 2년간 참 많이 써먹던 악마의 루프 -_-;;
그 어떤 훈련병도 결코 제대로 넘어가는 걸 본 적이 없는 압존법. 이걸 마스터해가면 훈련병 생활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군생활, 혹은 사회생활마저도 무난하게 할 수 있지요;;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 입니다.  뭐 말로는 설명이 힘드니 예제를 들어봅니다. 

"아버지, 할아버님이 전화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와 "아버지, 할아버님이 전화하라고 하셨습니다" - 어떤 것이 옳을까요? 후자가 옳습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연장자지만 할아버님보다 연장자가 아니므로 전화하라고 말하는게 옳은 셈이지요.

이걸 군대버전으로 돌려보면...

"김병장님, 행보관님께서 분대장들 행정반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정도가 되는데, 말은 쉽지만 실제로 공포의 대상(?)인 선임자를 낮춘다는거 자체가 쉬운일이 아닙니다.

훈련병이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정말 높은 상급자가 왔을 때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죠. 실제로 제가 상병시절 훈련소장님이(!!!) 옆 중대에 오셔서 훈련병 한 명에게 훈련받기 어떠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그 훈련병 왈,

"네! 힘들긴 하지만 분대장님 및 소대장님이 잘 챙겨주셔서 할 만 합니다!!!" 라고 외쳤던... 그 훈련병 및 담당 분대장들의 뒷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알아가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충분하지만, 솔직히 군대가서 겪을걸 미리 준비해 간다는 것 자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겪어보기 전에는 남이 아무리 설명을 하고 말을 해줘도 알 수 없는게 군생활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군대 역시 사람사는 곳입니다. 지나가면 다 추억(?)이구요.

아무튼 이 무더운 여름 군입대를 앞둔 모든 분들, 파이팅입니다~ 꼭 살아남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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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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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력은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정작 누군가의 기념일이나 실생활에 관련된 일, 혹은 학교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기억하는덴 어딘가 나사하나가 빠진 듯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 사람과 대화한 내용들, 혹은 그냥 지나쳐간 사소한 일들은 이상하리만큼 기억을 잘 하곤 하니까요.

아무튼 중요한 건 오늘은 6월 23일, 제게 있어선 무척이나 특별한 날입니다.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날짜라곤 세는데 열손가락도 필요없는 제가 기억하는 날 중 하나니까요...

가족이나 절친한 지인의 생일은 당연히 아니고, 여자친구가 생겨 기념하는 날은 아닙니다. 과거에 실연당한 아픔이 너무 커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그런 날짜는 더더욱 아니지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날이길래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의 청년이 기억할지 대충 짐작이 오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3년 전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한국은 지금 23일 새벽 6시 13분 정도 되었겠지요) 에 전 누구하나 깨우는 사람도 없이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 전날 분명히 신촌에서 친구와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하고 넋이 나간 상태로 집에 돌아온게 그 날 새벽 2시가 넘었었는데, 이상하게 술기운 하나 없이 말짱하게 깨어났죠. 그 날 아침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졌었는데...

2년 전 오늘, '아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1년 전 오늘, 전 친구와 함께 5일 뒤 출발인 유럽여행에 쓸 배낭을 찾아 동대문을 하루종일 돌아다녔죠 - 당시 먹고 싶은게 시장길거리에서 보이면 참지 않았더랬죠. 그러고보니 이 친구는 오늘 학교 프로그램에 뽑혀 3주간의 동유럽 일정에 다시 떠나는 날이기도 하군요.

그리고 2011년 6월 23일..
여명은 트지도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는 이른 새벽 5시 경, 악몽을 꾸고 온 몸이 흠뻑 젖은채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동안 입밖에 내지도 않았던 '관.등.성.명.' 과 함께 말이죠 =_=...

네... 대충 짐작하신 분들이 계시듯 제 군입대 날이었습니다.
짧은 머리에 가족들을 뒤로하고 2년간의 복무를 시작한 바로 그 날...
그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그 날 일정조차 소상하게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조용히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입대 한 시간 반 전 연무읍에 위치한 '본 죽' 에서 전복죽 한 그릇을 천천히 먹었드랬죠.
그 넘기기 쉬운 죽이 왜 그리 안넘어가던지...
그리고 당시 그 곳이 제 자대가 될 것이란 것은 생각지도 못한채 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이상하게 그 날 찍은 사진 한 장 조차 없는데, 개인 소지품은 모조뢰 돌려보내고 당시 지급받은 수첩은 훈련기간 동안 사라져 훈련병 시절 초기의 일기는 남아있지도 않은데, 이상하리만큼 더 뚜렷하게 기억이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한 때일 뿐이지만, 어찌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지요... 
웬지모르게 기분이 오묘해지는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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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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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보도가 되지 않을 뿐 군대란 곳에선 1년 내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법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않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심 '우리 부대는 아니겠지' 라는 마음이 드는게 솔직한 마음이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훈련병 사고 소식이 전해졌네요 - 고열 상태서 야간행군에 투입되었다가 급성 호흡곤란으로 유명을 달리한 훈련병... 

훈련소 분대장 동기가 링크걸어둔 기사를 보는데, 친구 말대로 의무병들이랑 훈련소 분대장들 그렇게 일하지 말란 댓글이 베플이네요. 08년 12월이면 제가 막내 분대장을 하던 시절인데, 이 댓글을 보고, 그리고 저 수많은 추천수를 보고 현역 시절 느끼던 억울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이렇게 급하게 포스팅을 해봅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훈련소에서 크고 작은 부상이 없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겠지요. 그리고 단체 생활을 하는 만큼, 아무리 개인 위생관리가 철저하다 하더라도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게 훈련소 생활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큰 문제는 전반적인 의료체계입니다. 

한해 평균 12만여명이 다녀가는 육군훈련소 - 우리 국군 최대 교육기관이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항상 심각한 간부 및 병사 인원부족에 시달리는 피곤한 부대 중 하나랍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번에 문제가 되는 의료 체계와 같은 경우 2400여명의 인원이 교육받는 교육 연대에 배치되어 있는 군의관은 단 1명 이랍니다. 

군의관 1명이면 충분하지 않냐고요? 하루 2400명이 훈련받고 일과 후에 의무실을 이용하는 인원 평균 숫자가 얼마나 되시는지 아십니까? 군의관과 의무병들에게 있어 정말 운이 좋은 날은 50 ~ 60여 명이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12개의 중대에서 1개 중대 200명 중 하루 환자가 10명이 안된다 하더라도 최소 100여명입니다. 실제론 이보다 더 많지만, 그저 이 100명만 계산해보더라도 군의관님께서 1명당 딱 "3분"만 살펴보신다는 가정 하에 총 진료시간은 300분, 5시간입니다.

논산 육군훈련소는 교육을 행하는 주요 과목의 교장이 무척 멀리 떨어진 편입니다. 주요 과목 교육을 끝내고 복귀하면 오후 5시가 훌쩍 넘는 것은 무척이나 흔하다 못해 당연하게마져 생각될 정도니까요. 군대에서의 취침시간은 오후 10시 - 훈련 복귀 후 바로 의무실 진료를 본다 하더라도 1명 당 3분 이상씩 못보고 딱 100명 진료할 수 있네요. 

이런데 제대로 된 진료가 가능할까요?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까???

2년간의 육군훈련소 분대장 생활 도중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건 이유없이 갈구던 선임도, 그저 답이 보이지 않는 후임도, 끊임없이 작업을 주던 행보관님이나 휴가를 제한하던 간부님도 아니었습니다 - 제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프다고 의무실 이용을 바라는 훈련병들에게 "오늘은 안되겠다" 라고 말하며 그들을 설득해야 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제가 막내 분대장 생활을 할 당시 가장 먼저 배워야 했던 건 환자관리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최고 선임으로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것도 환자 관리였지요. 교육을 맏은 분대장이 무슨 '환자 관리' 냐고요? 말 그대로 '주요 환자' 가 나오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었지요. 예를 들자면 폐렴이나 결막염 환자가 나오는 것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제 군생활 기간에는 '신종플루' 감기 환자를 막는 것도 주된 임무였고요.

보통 어느 정도의 열을 동반한 감기 환자가 무척이나 많은데, 감기 기운 있다고 약받으러 의무실에 가겠다는 인원들이 적어도 몇십명은 됩니다. 감기환자들 중 '심각한' 인원들만 추려내야하는게 1차 목표인데, 대부분 다음 날 보내주겠다는 말로 다독입니다 - 분대장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그냥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사정은 다 비슷합니다.

환자들 중 1차로 인원들을 추려내면 2차로 '정말 심각한' 인원을 추려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정말 그대로 두면 큰일날 것 같은 인원들의 숫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거지요. 이 인원이 한두명일 경우 군의관님께 보냅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으면? 대부분의 경우 그들 중 제일 심각한 이 몇 명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사제 약' (특히 타이레놀) 을 주며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타이레놀 같은 사제 약은 어디서 구하냐고요? 보통 휴가복귀하는 분대장들이 자비를 들여 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휴가 복귀하며 타이레놀, 소염제, 항생제, 결막염 방지 안약 등 약만 한 두 봉지 가득 채워 사들고 복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비상용 약까지 떨어지면 고참 분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이는 통상 간부님들께 보고가 됩니다 - 

"지금 중대에 이러이러한 환자가들이 있는데,
진료보내면 논산병원으로 이송되거나 입실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
약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럴 때 환자가 있는 해당 소대의 소대장님들은 급한 경우 당일 밤 늦게 약국에서 약을 구해다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논산 국군 병원으로 후송되거나 입실을 하게 되는 경우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지요.

훈련소 바로 옆에 위치한 논산병원에 이송을 시키거나 입실을 꺼리는 까닭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다음 날 아침 훈련소장님께서 주관하시는 회의에 각 부대의 환자 현황 (특히 논산병원 진료환자) 과 의무실에 입실하고 있는 환자들의 증감현황이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이 부대는 환자가 많구만? 관리에 좀 더 신경써야겠어," 라는 훈련소장님(★★)의 말 한마디면 해당되는 모든 하급 부대가 뒤집히죠.

두번째 이유로는, 훈련병이 입실을 하고 있을 경우 교육을 빠지게 되고, 일정 시간 이상 교육에 불참하거나 주 교육을 놓치면 유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역시 훈련병 관리 허술, 즉 부대관리 허술로 기록됩니다. 간부님들의 인사관리에 기록이 남는다는데, 그걸 좋아하실리는 없겠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고되는 환자는 없는게 최고라는 인식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는 발생하지 않는게 최선이고, 발생하더라도 상급 부대에 보고되지 않은 채 하급 부대 선에서 처리할 수 있으면 최상이라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러다보니 겉으로 보기엔 다른 일반 환자들과 같지만 속으론 큰 병이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이게 잘못하다 의무실 진료를 단 한 번이라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병이 터지는 상황이 나오게 되는거죠.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네... 표면적으론 병사인 분대장입니다. 
분대장들이 환자 조사하고 의무실 인솔까지 맡으니까...
훈련병들을 가장 가까이서 돌봐야하는 분대장이니까, 당연히 의무 소홀이 된 셈이죠.
근데 그거 아시나요?
의무를 다하려 모든 환자들을 의무실로 데려가면, 의무실 업무는 마비되고 자신보다 선임급 의무병들 및 간부들에게 욕은 욕대로 들어먹고...
그러다가 환자 터지면 또 한소리 듣죠, 왜 환자 관리 안했냐고...

대다수의 간부님들께서 의무실과 관련하여 훈련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대장들에게 얘기했으니 의무실 이용은 분대장에게 보고해라"
 

분대장들 고생하는 건 알지만서도 그게 그분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니까요.
 
그럼 내막을 모르는 훈련병들은 수근댑니다 -

"분대장들이 귀찮아서 환자들을 전부 의무실 보내지 않는거다" 라고...

분대장들도 병사고, 훈련병 시절 그대로 겪어 본 인원들입니다.
비록 분대장들이 전문적인 의료 지식은 없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훈련병들이 어떤 입장에 쳐해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픈 이들은 가능하면 전부 진료 받게 하고 건강한 모습 보고 싶어합니다.
최종적으론 무사하게 수료시켜 웃으며 자대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저희 마음처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네요... 
공식적인 규정에 따르면 저희는 '권한이 없는' 병사일 뿐이니까요.
속된 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병사니까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어린 꼬꼬마 막내 시절에는 너무 힘들어서 마음의 편지라는 극단적 방법도 생각했었죠.
하지만 고참이 되고 연대의 행정계열 병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 중대장님 이상 상급 지휘자에게 올라가는 마음의 편지들은 전에 미리 다 검열당한다는 사실... 

솔직히 작업은 얼마든 몸으로 때우면 되는 것이고, 잘 안되면 욕 한 번 듣고 담배 한 대 피워주고 다시 한 번 하면 되는 겁니다. 몸쓰는게 별건가요, 막사 이전 당시 12명 남짓이서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2개 대대 분량 철제 관물대 수백개 넘게 옮기고 바로 야간 교육 한 적도 있는데요 뭐.

교육 재료요? 잘 분실되는 것들이나 제때 보급 안되는, 하지만 검열은 자주 받는 그런 소모품은 휴가 복귀하면서 자비 들여서 사오면 됩니다. 그럼 충분히 메꿀 수 있어요. 가끔 소대장님들도 도와주시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면 되죠. 

일찍 일어나고 교육 준비하다 늦게 자고, 그리고 경계근무를 위해 밤에 깨는거요?
잠은 줄이면 그만입니다. 4시간 이상 못자고 교육 나간 적도 많고 밤새고 교육 나간 적도 있지만 악으로 버티면 그만입니다. 

근데 사람 건강가지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사회에서 들여오는 약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게다가 원칙적으론 하면 안되는 일이구요. 하지만 현실은 현실... 그렇게라도 안하면 환자관리 전혀 안됩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몇몇 훈련소 간부님들조차 어떻게 손을 대지 못해 분대장들이 휴가복귀하며 약사들고 오는 것을 묵인하고 때론 스스로 자비를 들여가며 약을 가져다 주시는 겁니다.  

육군에서 훈련소의 각 연대당 군의관 두 분 정도만 더 늘려주시면 지금보다 많은 훈련병들이 더 좋은 진료를 받고 건강하게 훈련받을 수 있을텐데...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 그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그래서 염치없게 부탁드립니다. 
입대하실 분들, 혹은 훈련소를 거쳐갈 모든 분들,
제발 아프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아프다면,
어떤 말에도 굴하지 말고 반드시 진료 받아주세요. 

그게 여러분 스스로를 위한 길이고,
여러분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한 길이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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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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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훈련소 분대장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들 중 하나가 '편지' 였습니다. 건장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라지만, 부모님과 친구로부터 받아보는 편지에 마음 설레이지 않았던 훈련병 / 신병 시절을 거치지 않은 군필자가 있을까요? 그리고 떨어진 아들 / 친구 / 남자친구를 그리며 그의 편지를 기다려본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는 항상 편지가 넘칩니다 - 교육기 중에는 중대로 배달되는 편지가 백여통은 가볍게 넘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까요. 거기에 몇년 전부터 실시하는 인터넷 편지까지 합하면 분대장들에게 있어 거의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랍니다. 덕분에 이 '편지'와 관련된 일화들이 수도 없지 많지만, 그들 중 '안부편지'에 관한 기억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모든 군부대에 있는 장병들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이상) 각종 명절에 집에 안부편지를 쓰라는 지시를 받곤 합니다. 어버이의 날도 그러한 날들 중 하나지요. 하지만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은 매주 주말 부모님께 안부편지를 작성합니다 - 바쁜 교육일정 속에서도 매일같이 마음 졸이고 계실 가족분들을 위해 훈련병들이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훈련병들의 경우는 항상 하고 싶은 말들이 많기에, 그리고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던 가족들의 소중함이 마음 속 깊이 와닿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만 나면 편지 쓰기에 몰입을 하곤 하는데, 종종 눈시울을 붉히는 인원들도 있곤 합니다. 비슷한 패턴의 교육기들이라 할지라도 훈련병들의 그런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 니들이 참 고생을 하긴 하지... '

라는 진솔한 측은지심과,

' 에효... 나보다 니들이 더 깝깝하겠지... '

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정심(?)이랄까요...;

하지만 훈련소라는, 아니 정확히는 징병제 군대인 국군의 특성 상 종종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가정 불화로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에게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훈련소의 '매주 부모님께 안부편지 쓰기' 라는 시간이 참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처음 경험없는 분대장 시절, 이런 이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 스스로도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와 이야기를 더 하려했고, 제가 어떻게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훈련 초기 안절부절 못하던 제 모습을 발견한 한 냉철한 선임은 "사정 없는 훈련병은 없다, 스스로 이겨내고 적응하게 해야 한다" 라는 충고를 해주더군요. 

처음에는 그런 선임의 충고가 참 야속하고 냉정하게만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그 훈련병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지켜만 보라는 선임의 조언에는 100% 동의할 수 없었고 그 충고를 온전히 따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조언 덕분에 그가 지금 그 자신을 신경써주고 걱정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수료 즈음해서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교육기 마지막 주차에 부모님께 제 평생 가장 긴 안부편지를 써서 보냈었습니다. 웬지 모르게 울컥해졌던 그 당시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네요. 

경험없던 저도 그 이후 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스스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군생활을 통해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고, 하루 하루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으니 말이죠... 뭐랄까... 좀 더 성숙해졌다고나 할까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군생활이었지만, 이런 기억을 더듬어 볼 때면 참 잘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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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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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페이스북에서 "LJ님이 알지도 모르는 사람" 이라며 올라오는 추천인들 가운데 군대인연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방금 전에도 또 한 명의 군시절 인연을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났답니다. 근데... 다들 반갑기는 한데 페이스북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연결을 시키는 건지 후덜덜할 뿐입니다;;

아무튼 그 중 한 명이 올린 사진들 중 요런 사진이 있었습니다.

저 훈련병하고 저 뒷모습의 조교.. 분명 친숙한 모습인데..;;;


순간 멈칫 하고 깔깔거리며 웃었답니다.
1주차 훈련병의 당황해하는 얼굴과 분대장의 저 강압적인 자세 -
저거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방법이거든요.
당해본 적도 있고, 직접 사용해본 적도 있는, 효과 만점의 자세랍니다;;;

참 많은 이들이 분대장들을 악마라고 생각을 하곤 하지요. 뭐 나중에는 풀리는 기초군사훈련 기간 동안 쌓였던 앙금이 자연스레 풀리는 경우도 많지만, 분대장들의 경우 보통 웃기지도 않는 자존심(?) 이란게 있는지라 먼저 훈련병들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경우가 제 기억에 있으니...

때는 09년 6월 경... 당시 마지막 5주차 교육으로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더위 때문에 진이 빠지는 날들이었는데, 하필 5주차로 접어드는 주말이 갑자기 더 힘들어지게 된 건 며칠 지나지 않아 전역할 규뱀 ( _ _ 규 병장 - 병장을 빠르게 반복해서 말하면 뱀이 된다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이해 불가;;;)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더위를 먹은건지 주말 훈련병 통제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죠. 아무리 집에 곧 갈 사람이라지만, 저 사람이 내뱉는 한마디에 저를 비롯한 후임들 선에서는 초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 핵쓰나미가 몰아칠 수 있기에... 

아무튼 덕분에 규뱀이 속한 3소대 훈련병들은 편한 주말을, 나머지 소대 훈련병들은 3소대 훈련병들이 빠진 만큼 좀 더 일을 해야했던 (통제하는 각 소대 분대장들 역시 같은 상황) 주말이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4주차 마지막과 5주차 주말에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건지, 3소대 훈련병들이 매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겁니다. 본디 5주차가 되면 좀 헤이해질 때가 된건데, 통제도 잘 따라주고 뭐든 척척해내며 타 소대의 귀감(?)이 되더군요. 게다가 더욱 신기한건 통칭 '개말년' 규뱀 자꾸 틈만나면 훈련병 생활관에 들락날락 거리십니다 -_-;;; 

"규뱀, 날씨때문에 더위먹은겁니까? 개 잡아드립니까?" 라는 농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드랬죠. 아무리 이 사람이 평소 좀 다정다감하고 '착한' 편에 속하는 선임이었다지만,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해야한다는 말년 병장인데 말입니다. 인원이 당시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실체는 훈련병들이 수료하기 전 격려 차원에서 열어주는 "훈련병의 밤" 행사에서 드러납니다. 당시 훈련 과정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격려해주는데, 규뱀과 3소대 훈련병 몇 명이 찍힌 사진이 나타난 순간 강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전! 지! 전! 능! _ _ 규!!!"
"사 ~ 랑 ~ 해 ~ 요 ~ _ _ 규!!!!!!"
"꺄아~~~~~~~~~~" 
"우 ~ 주 ~ 지 ~ 배 ~ K병장!!!"

...

=_=...

다른 소대 훈련병들과 강당 뒤쪽에서 행사 진행을 바라보던던 타 분대장들 및 간부님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미친듯이 웃기 시작합니다. 당시 강당이 무척이나 어두웠고 훈련병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괴성에 웬만한 말들이 묻힐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가끔 특정 분대장이 훈련병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는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전지전능은 뭐고 우주지배는 뭔지;;;;; 

그 날 밤 결산회의에서 규뱀 왈,

"훈련병들을 아량과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난 최고의 분대장이지 푸하하하하하" 

...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 못했답니다.

수료하는 그 날까지 규뱀을 향한 3소대의 광신적인 열정은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현상을 타 분대장들 및 간부님들은 "규뱀교" 라 정의지으며 일종의 사이비 종교 취급을 해버렸죠. 그 후로 1년이 지나 저도 말년에 참 이 것 저 것 많이 시도(?)를 해보았는데, 그런 반응을 얻을 수는 없더군요. 끽해야 사랑해요 정도?

나중에 규뱀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5주차의 미스테리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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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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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밤 갑자기 제 핸드폰으로 카톡 메세지 한통이 왔습니다. 오밤중에 누군가 해서 봤더니 이럴수가, 군에 있을 때 정말 제가 아끼던 홍일병이더군요. 군번이 꼬이디 꼬여서 일병 계급 내내 막내 가까운 생활을 해야하던 친구였는데, 아니 글쎄 벌써 전역이 5일 밖에 안남은 상태에서 마지막 휴가 복귀를 앞두고 있다고 하네요. 순간 잠이 확깨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

보통 군대에서 '분대장' 이라 함은 10여명 정도의 병사로 이루어진 분대를 이끄는 선임 병사 및 부사관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육군훈련소에서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 저 분대장이란 단어입니다. 보통 사회에서 '조교' 라는 이름으로 칭하는 병사들을 육군훈련소에서는 '분대장' 이라 부릅니다. 이는 훈련소 내의 교육 시스템 때문인데, 한 명의 분대장이 평균 10~14명의 훈련병들을 책임지고 '장' 으로서 이끌며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지요. 

육군훈련소에서 연간 배출되는 약 12만명의 훈련병들 가운데 매년 800 ~ 900명 가량이 훈련소 분대장으로 선발이 됩니다. 이들은 특기 없이 입대한 청년들 중에서 선발이 되는데, 신체조건과 인성 및 지능검사 결과를 통해 1차 선발을 하고 훈련 초반 2주간에 걸쳐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그리고 훈련소 본부의 참모들과 참모장(✭)에 이르는 다단계의 면담(?)과 소양평가를 거쳐 최종적인 선발 유무가 결정됩니다. 

동기가 찍은 호각, 사슬, 견장, 휘장

엄격한 선발 과정을 뚫고 뽑힌 최종 선발자들은 모든 동기들을 떠나보낸 이후 각자 훈련소 내 7개의 교육연대로 배치를 받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연대에서 약 한달여간의 교육을 받은 후에 훈련소 내의 분대장 교육대에서 3주간의 혹독한 훈련 및 모든 교육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모든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훈련소 분대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챙의 모자와 가슴에 패용하는 휘장, 그리고 지휘관의 신분을 나타내는 녹색 견장을 훈련소장 및 자신의 속한 연대의 연대장으로부터 선사받게 됩니다. 진정한 군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죠. 

훈련소 분대장에게는 몇가지의 특전들이 주어지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많은 휴가입니다. 병사에게 있어 휴가란 가뭄 속의 단비요, 보통 2개 기수의 교육이 끝나고 3박 4일이나 4박 5일의 휴가가 주어지곤 하는데, 2개 기수의 교육이라 하면 보통 3달 정도의 기간입니다. 얼추 계산해보면 적어도 일년에 4번은 집에 갈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휴가들이 거져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일종의 '보상'이니까요. 훈련뵹 기수가 들어와 있는 동안 이들에겐 정해진 일과시간이 없습니다. 하루 웬종일 훈련병들에게 붙어서 지도를 해야하고, 훈련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은 다음 교육을 준비하니까요. 훈련병들이 일어나기 이전에 잠에서 깨야하고, 훈련병들이 잠이 든 이후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벚습니다. 밤에는 모든 군인들이 그러하듯 무장을 하고 경계근무를 나가고요. 훈련병이 있는 기간만큼은 휴일없는 주 7일 근무를 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일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권상우씨가 육군훈련소의 분대장 생활에서 얻은 경험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듯이,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그 어느 부대보다 풍부한 곳이고 자기 관리 및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기를 수 있는 곳입니다. 아, 부수적인 것으로 각종 공구 사용법 및 작업 기술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 연대의 관리구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소요는 분대장들이 해결하니까요. 

즉, 교육에서부터 조직관리각종 작업 등 자신의 한계를 다방면으로 확실하게 테스트할 수 있답니다 -_-;;;


많은 이들에게 때론 사악하고 감정없어 보이는 훈련소 분대장들도 결국은 국방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중인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명예롭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혹시라도 주변에 훈련소에서 분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휴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것 같다며 구박하지 마시고 "훈련병들 교육시키느라 수고가 많아~ 조금만 더 힘내라" 라고 격려 한 번 해줘보세요. 아마 너무 고마워서 밥 + α 를 제공해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아질 테니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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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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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현지시각 4월 26일 부) 복학 후 1년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응하기 힘든 문제도 있었고, 군에 있을 동안 전혀 손을 대지 못했던 전공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여러가지 말못할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할 겸 학교 내 잔디밭에 앉아 책도 읽고, 그늘에 누워서 살짝 낮잠도 즐겨주고 했답니다. 근데 많지는 않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들이 문득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진정 봄이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2주 전엔 눈이 왔던 곳이니까요 ^^;;) 작년 이맘 때 즈음이 생각났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훈련소 (KATC: Korean Army Training Center) 에는 '연무문' 이라 불리는, 짙은 녹색의 기와가 올려진 거대한 흰색의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연무대' 라 칭한 훈련소의 상징과도 같은 역활을 하는 문입니다. 문 뒤로는 왕복 4차선의 일자형 도로, 편의상 훈련소 주도로라 불리는 도로가 훈련소의 중앙까지 곧게 뻗어있죠. 훈련소에서 제가 속해 있던 곳은 제29교육연대, 신막사로 이전하면서 연무문 근처 훈련소의 최외곽지역에 위치했던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훈련소의 정문 겪인 연무문과 가깝다는 이유로 연무문 및 주도로는 저희의 정리 담당구역이었습니다... ㅠ


며칠 전 부대 방문한 동기가..

항상 봄만 되면 금방 피었다 떨어지는 벚꽃잎과 목련 때문에 항상 정리를 해야하던 주도로 - 덕분에 무척이나 많은 노동거리를(?) 제공하던 주도로의 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특히나 이 곳을 통해 귀한 손님들(?)도 자주 오시기 때문에 비단 봄 뿐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항상 정리된 모습을 유지해야 했어야 했기에... 주도로에 위치한 수많은 나무들은 아름다움보다는 원망과 저주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이런 인식에 지난 2010년 4월에 변화가 옵니다.

작년 4월의 막바지, 제 마지막 훈련병 기수가 오전의 사격술 예비훈련을 마치고 정훈 교육을 들어간 틈을 이용해서 동기 / 후임들과 함께 '영광의 전역마크'를 부착할 군복을 군장점에 (사회의 수선점과 비슷) 맡기고 돌아오는 길어었습니다. 모두들 곧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보였고, 회상의 대상이 되는 모든 추억들은 모두에게 다양한 종류의 웃음들(?)을 안겨주었죠. 그 때의 기분 탓이었을까요?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시야에 들어온 주도로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무척이나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훈련소 주도로 - 2010년 4월의 어느 날...


당시 조각을 맞추듯 기억해낸 주도로의 사계절, 비록 기억 속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봄이면 화사한 꽃들과 자라나는 푸른 싹들이 따사로운 태양아래서 빛나고, 여름이면 우거진 녹색의 나무들이 위용을 뽐내며, 가을에는 어김없이 떨어지는 낙엽들이 많은 이들을 우수에 젖게 만들었죠. 겨울에는 하얀 눈이 텅 빈 도로를 하얀 눈이 뒤덮고 이를 옆에서 감싸는 눈쌓인 나무들은 장관을 이루곤 했었죠. 이 모든 것을  훈련소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자각했다고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오더군요.

군생활이나 사회생활, 차이는 뚜렷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 / 해야할 일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정작 자기 주변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참 아름답고 따뜻한게 이 세상인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바쁜 임무에 쫓기며 고생한 모두가 그리워집니다 -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그들과 좀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거란 아쉬움에...

만약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똑같이 힘들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추억들과 인연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요   ^_____^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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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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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보통 옷이나 신발 같은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류에 돈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실제로 2008년 여름에 입대하려 한국 갈 때 들고갔던 가방에 담겼던 옷과 신발들을 2010년 가을에 복학할 때 미리 넣어놨던 방습제들만 제거하고 그대로 들고왔으니까요;;; 추가적으로 가져온 것이 있다면, 몇 권의 한국 책들과 "전투화"입니다.


보통 군화라고 부르지요. 그냥 집에 두고 볼 때마다 헝그리 정신을 느끼고자 들고온 것이 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신고다니려 들고왔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구요;;; 구두가 필요한 날에도 이 것 신고나가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별 티가 나지 않지요... 필요에 따라서는 제가 광을 좀 내주면 되니까요^^;;

이쯤되니 제가 신고다니는 신발이 군화임을 알아본 친구들이 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쳐다봅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저 신발이 절대 편한 신발은 아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저도 저게 참 불편했는데, 발목 부상 심하게 한 번 당하고 나니 발목까지 튼튼하게 잡아주는 저런 부츠가 더 편해지더군요. 

하지만 한 켤레만으론 한계가 있는 법이라 다른 한 켤레가 필요하던데, 미국서 국군 전투화를 구할 수도 없거니와... 해서 생각해낸게 미군 전투화였습니다. 국군처럼 납품에 의해 공급되는 시스템이 아니다보니 참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더군요. 이 것 저 것 살펴보다 무난하게 가보자 싶어 Converse 사에서 생산하는 공군용 전투화를 택했답니다. 

빨간 뚜껑의 박스와 군을 위한 물품이라는 뜻의 Duty / Uniform

특유의 Converse 마크는 이 곳에도 역시..

Sage Green 이라는 색인데, 생각보다 무난합니다.

전투화라 그런지 무척이나 튼튼하게 박음질이 되어있습니다.

국군 전투화랑 비교사진입니다 - 무게는 오른 편이 더 가볍구요.

푹신한 메쉬 재질의 미군 전투화와 단순 가죽의 국군 전투화

딱 봐도 국군 전투화가 더 불편해보이죠..

뒷굽의 차이 - 각진 국군 전투화와는 달리 부드럽게 곡선 형태로 말아 올려져 있습니다.

밑창의 차이입니다 - 단순한 패턴의 국군용과는 차이가 있네요..


한 3주 정도 신었는데, 소위 '길들이는' 기간이 별 필요가 없더군요. 박스에서 꺼낸 날부터 아주 잘 신고 다녔습니다 - 어쩌면 전투화만 너무 신어서 제 발이 길들어져있던 것일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오늘 간만에 국산 전투화를 신었는데,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 바로 느껴지더군요.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가죽을 뚫고 스며드는 냉기와 전투화 속에서 고인 열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게다가 물기가 있는 실내에서 갑자기 미끄러질 뻔한 경우도 몇 번 있었구요. 참고로 위의 전투화는 작년 제가 전역할 때 즈음부터 조금씩 풀리던 신형 전투화 2종류 중 하나입니다. 

국군 전투화의 납품가가 약 6만원이 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참 웃깁니다. 요즘 미국도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제가 산 미군 전투화가 한화로 약 9만원 가량입니다. 민간에 파는 것이라 가격이 오른 것이고, 미군 ROTC 친구에게 물어보니 군인의 경우 더 싸게 구입하거나 정식으로 납품 계약을 맺은 것이면 거의 공짜에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량 양산 납품에 의한 국군 전투화는 6만원대, 대량 양산도 아닌 소매 형식으로 팔리는 이런 성능 좋은 미군 전투화의 가격 차이가 2배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요. 물론 제품에 따라 가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솔직히 무언가 이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뭐... 굳이 생각해보면 더 이상 저랑은 큰 상관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군대 갈 제 동생과 다른 수많은 이들을 생각할수록 개개인이 사용하는 장구류 만큼은 좀 더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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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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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 지금, 기분이 들떠 있어야 정상이다.
얼마 안있으면 시작하는 '검은 금요일' 폭탄 세일과 휴일들로 한숨 돌리면서, 그리고 느긋하게 맥주 한잔 하며 한국에 있는 죽마고우의 생일인 23일을 전화로라도 축하해주고있어야 정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11월 23일 오후에 연평도에 북한군의 계획적 포격이 있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분노해있는 지금, 누군가는 우리 정부와 군이 쓸데없는 훈련으로 빌미를 제공했다느니 하는데, 그들에게 하고싶은 한마디 - "Bull Shit". 떠들기 전에 안드로메다로 가서 개념부터 찾아올 것을 부탁하고 싶다. 


해병대 병사 2명이 '전사'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아직 뉴스가 정리되지 않아 확신은 못하겠지만, 중상자들 중에서 추가 전사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뉴스도 있더라. 이제 나이 20, 22세의 친구들이다 - 만으로 치면 한명은 채 20년을 살지도 못한 친구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아려오더라.

복학하고 나서 어린 친구들에게 듣는 말이 있다 - 요즘 자기 주변의 친구들이 군대를 가기 시작하니까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확 변했다고 하던가?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군의 근간을 이루는 병사들 모두 누구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요, 친구였던 이들이다. 그냥 그저그런 '아저씨'들이 아니란 말이다. 말이 좋아 '순국'이지, 이들은 북한군에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역자로서 정말... 진심으로전쟁이 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떻게 보복을 할 수단이 없다. 만약 지금 보복에 나선다면 북한은 악을 쓰며 대응할 것이고, 그야말로 60여년의 휴전을 깨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혼란스러웠던 당시 대응 출격에 나섰던 공군이 아군의 자주포 사격과 동시에 일대의 북한 해안포 진지를 짓밟아버리지 않은 것이 아쉬운 것은... 적어도 그 당시에 그랬다면, 북한군이 백령도 근처의 포진지도 개방하고 있어 '극한 이상징후'를 보였다 라고 말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시기에는 그가 보여줬던 강력한 대처 방식이 우리가 취해야 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강경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문제된 것이니 더 이상 강경하게 대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겐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 "Bull Shit". 

내가 세상에서 가장 깡패같은 국가로 여기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미국, 중국도 거의 동급이지만).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부러운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안보' 의식이다. 속으로는 각종 문제로 시끄럽지만서도, 국가의 '안보'가 위험에 처하면 모두 하나로 뭉쳐 한 목소리를 낸다. 그리곤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고... 그게 설사 남들이 옳지 못하다고 지탄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역사적으로 국토가 적에게 유린당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못 취하고 넘어가는 국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북한의 독재정권에 끌려다녀야 하는가? 평화가 최우선의 방법이고 대화는 계속되어야겠지만, 우리의 국토가 유린당하는 상황에서 취해야할 방법은 분명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도 어영부영 목소리만 높이다 물러난다면, 지난 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그리고 최근 공개한 우라늄 농축기술 보유로 기세등등한 북한은 물론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에게마저 '목소리만 큰 아이'로 취급당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크게 기대하던 면이 없는 정부였지만, 이번 일 만큼은 정말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확전을 피하는 선에서 확실하게 매듭지어주면 좋겠다. 4대강 예산은 치수사업 할 만큼만 남기고 다 국방비로 돌리면 더 좋고. 이 기회에 훈련시설도 현대화하고 해병대 규모도 늘리며 해군 공군 필요한 장비 좀 확실하게 갖추게 해주자.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제발 부탁이거니, 신성한 국토 방위의 의무를 수행하다 먼저 산화한 두 해병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서정우 병장님,  문광욱 이병님,  
너무 죄송하고, 동시에 정말 감사합니다.
해병대는 아니지만, 두 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편한 안식 가지십시오.


방금 속보 한 번 확인해봤는데, 연평도에서 북한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2명이 확인.. 연평도 지역 주민분들은 아니지만, 공사장 인부분들이라는데... 우려가 현실화되는 건가...? 삼가 故 김치백님, 故 배복철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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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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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남들에 비해 군생활의 특별한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2년간 한 일이라곤 반복되는 5주간의 교육이었으니까 - 한 기수가 지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수가 오고, 같은 일상은 매번 반복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조로우면서도 길게만 느껴질 것 같은 5주라는 시간은, 떠날 것을 알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는 이들과 함께 할 때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처음 훈련소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불안함과 고독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강압적인 교관과 조교들과 함께 앞으로 5주를 어떻게 버텨나갈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같은 나이또래의 조교와 개인면담을 하다보면,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건 90% 이상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단련이 된 조교들 중에서도 종종 자신을 추스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군에 온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질 정도로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이가 오히려 너무도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냉정하고 침착해야하는 조교들이나 교관들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심장이 무척이나 좋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오래 뛰지도 못하고, 체격은 내 절반도 안되는 왜소한 체격. 면담 전 개인신상을 살펴보니 어린 나이에 심장 수술을 받은 경력도 있다. 어떻게 이 친구가 군에 오게 된 걸까 하고 갸우뚱하며 넌지시 물어봤다. 굳이 군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냐고. 담담한 듯 말을 꺼내는데,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자기 자신 세명이서 사는데, 근래에 들어서 집안 사정이 무척 힘들어졌다고 한다. 자기 약값만으로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그래서 집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면서 자기 건강도 찾고 싶어 입대를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무척이나 굼떠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훈련소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게으름을 피우나 싶어서 정신 좀 차리게 해줘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이들에 비해 정신적 지체가 있는 친구였다. 혹시나 싶어 부모님의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한 번 드려봤는데, 아들 이름만 들어도 울먹거리시는 어머님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불안함이 느껴졌달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정신적인 질환쪽으로 아직 선례가 없는 경우라서 군복무를 피할 수 없는 친구라고 한다. 군의관도 안타까워했지만, 방법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랴? 남은 기간동안 최대한 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저 두 친구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정말 굳이 이런 친구들을 현역으로 써야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들이라면 모두 공평하게 수행해야하니까.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니 제주도 근처에서 침몰한 고속정에서 병사 1명이 사망하고 부사관 1명과 이등병 1명은 실종되었다고 한다. 2010년은 우리 해군에게 있어 무척이나 잔인한 해인 듯 싶다. 그들 각자에게도 소중한 삶과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고, 그들만의 꿈이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스에 또 다른 한 명의 이름이 올랐다. 그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한다. 이제 대중이 원하는 길을 가겠다고 밝히는 그 사람... 그래,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사연이 무엇이든 많은 이들에겐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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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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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복학생이라서 그런걸까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 남학생들의 대부분이 아직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친구들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만나기만하면 군대이야기만 물어보네요 "형 / LJ, 군대는 어땠어?" 

솔직히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를 풀자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오늘은 한국군대 이야기보다는 이 곳, 미국서 접하는 군인들에 대해서 약간 말하고 싶습니다.



제 주변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ROTC가 2명 있습니다. 한 명은 해군 소속이고, 다른 한 명은 해병대 소속이지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들은 1년 후 정식으로 임관을 하겠지요. 그 중 해군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 왜 굳이 다른 길들을 놔두고 군대를 택했느냐는 질문이었죠. 그 친구는 제게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려주었답니다.

1. 리더쉽의 습득
2. 최신 기술을 이용 / 수학하며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음
3. 군인으로서 얻는 자부심과 혜택
4. 국가에 대한 보답

1번과 4번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2번과 같은 경우에는 '미군'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나름 짐작만 할 뿐입니다. 실제로 미군의 과학과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실제로 매년 열리는 학교 주관으로 열리는 Career Fair 에 가보면,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함께 각 군의 모병담당관들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답니다. 



미군으로서 가지는, 혹은 군에서 전역 후에 지급되는 혜택의 기반은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제정된 G.I. Bill 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너무 많아서 제가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보면 군대가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정부 지원 혜택들이 있습니다. 학자금 전액 지원이나 의료보험 제공, 혹은 주택 마련 지원 등 정부에서 따로 부서 (Department) 를 만들어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니까요. 

한국은 어떤가요? 전역 / 제대 군인들한테 그러한 혜택이 있나요? 말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죠. 얼마 전 뉴스에서 보니 전역군인들 중 부사관이나 위관급은 진급못해 전역하면 정말 낙동강 오리알 신세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던데...

물론 '모병제'로 운영되며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해주는 미군과 '징병제'에 빈약한 재정이 뒷받침해주는 국군을 똑같이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미국 친구들은 (비록 징병제라도) 제가 국가에 2년간 군인의 신분으로 있었던 사실을 알면 가장 먼저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너 정말 자랑스러웠겠구나!" 혹은 "네가 학교에서 떠나 군인이었던 2년이 자랑스럽지 않니?" 뭐 이런 식의 말들입니다. 비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말해줍니다. 전 이런 말에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죠.

꽃피는 화창한 어느 봄날...


전역 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제 큰 장애물 하나 넘었네" 라는 말이었습니다. 네, 하고 싶은 것 많고 해야하는 것 많은 20대 초반에 2년간의 의무복무 - 군복무가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한국사회입니다. 그리고 군대에 '말뚝박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할 것이 없는 '잉여' 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곳 군인들은 자신의 전투복 / 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또한 주변 사람들도 이들을 존중해주죠. 비단 군인뿐만이 아니라, 경찰에서 비롯해 소방관까지, 사회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그에 걸맞는 사회적 대우를 해준답니다(100% 그렇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요, 고마워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큰 생각없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군대다녀와서 학교로 돌아오니 예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네요. 사실 이 글은 이런 의도로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흘러가버렸네요. 

에휴... 여기서 푸념해서 뭐하겠습니까, 시험이 이틀 전인데 -_-;;;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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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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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군복무를 시작할 때 당시,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뭐하러 힘들게 군대에 가냐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그러니까 버티다가 제낄 수도 있지 않냐고. 그냥 웃어 넘겼었지만, 솔직히 그런 갈등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 군에 먼저 입대한 학교 친구들도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내가 첫번째였던 것 같다). 

이 블로그도 그 당시에 시작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보이는 내가 받은 첫 트랙백은  '군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라는 제목의 포스팅이었다.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은 기대할 수 없는지, 그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해준 글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저 듣고 읽는 것과,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체험을 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군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실감나게 이야기해줘봐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불가할 테니 말이다. 심지어는 가족들조차 말이다.

지난 2년이라는 시간도(정확히는 23개월이지만) 나와 내 전우들에게 있어서는 하루하루가 인생의 커다란 획을 긋는 역할을 했었지만, 다른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마치 나를 가두고 있던 벽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린 느낌이랄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느낌조차 든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군생활을 명예스럽게 마치며 얻은 자신감. 거기에 훈련소 분대장이라는 직책으로 생활하며 얻은 사교성. 다른 어떤 것을 배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두가지라도 있다는 것이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아, 생각해보니 얻은 것이 한가지 더 있다. 군 입대를 하면 '수양록'이라고 불리는 일기장을 준다. 지난 2년간 빼곡히 기록해 온 나의 일상은, 이제 내가 가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흐트러질 때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임을 깨닫게 해주겠지.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다.
세상에 덤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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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훈련소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들었던 생각들...
지극히 주관적인 의문점들뿐일세. 일단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1. 처음 들어오는 훈련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병들은 왜 훈련병때 배운 것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을까? 그리고 그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싶어지는 고참의 마음은 도대체 왜???

  2. 병생활을 경험한 간부들이 오히려 왜 병사들 입장을 생각을 잘 안해주는 경우가 빈번할까?

  3. 각종 언론에 노출되는 좋은 사례들, 왜 내가 속한 부대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거지?

  4. 왜 내 차례가 되면 항상 일이 꼬이는 것 같은 걸까? 휴가나 외박에서 비롯해서 각종 작업 및 검열 등등...

  5. 좋게 바뀐다는 것들은 바로 조치 가능한데도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반면, 왜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은거지?

  6. 소원수리 혹은 마음의 편지 - 중간층에서 미리 교육하거나 검열하는거 모르나..? 그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만 좋으면 우수한건가?

  7. 왜 주변 사람들이 시간에 대한 개념이 자꾸 변하는 건지? 초반엔 '벌써'라고 하다가 중간엔 '아직'이라고 하다가 또 '벌써'라고 한다.. 뭐지 이건...?

  8. 군대가면 꼭 연락하고 편지 써준다는 사람들, 정말 써줄 의향은 있는건지?

  9. 왜 '군인 아저씨'라고 어릴 때 주입교육을 한거지? 복무중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형' 또는 '오빠'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10. 겉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 - 고위 간부들도 다 밑에서부터 거쳐간 것일테니 알만큼 알텐데 왜 굳이 사열이나 검열시 '보여주기 식'에 넘어가는 걸까?

  11. 아래 사람한테는 지킬 것을 지키라 하고 규율을 강요하면서 윗사람한테는 조용히 넘어가려하네? 병사들한테는 위가 항상 아래에게 모범을 보이라면서...? 물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도 있지만.

  12. 청소는 왜 해도해도 안끝날까? 물론 기본적인 청소와 정리정돈은 당연한 것이고 대군신뢰 증진 목적에 큰 의미는 있지만 좀 적당히 하자. 솔직히 민간인들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잖아? 대변기 안쪽에에 물내려가는 곳에 생긴 물때를 매번 어떻게 닦아?

  13. 첨단정보매체 반입 금지고 휴대도 금지잖아? 그런데 매일 그런거 들고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통제나 확인도 잘 안하던데...?

  14. 도대체 명확한 군사보안이란? 밀리터리 매니아 사이트나 군관련 블로그를 통해서 대중에 공개되면 합법, 내가 하면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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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고민들

blah blah blah 2010. 3. 20. 18:57
  1. 황사
    부관 근무를 서고 일어났는데, 너무 황사가 심하다.
    눈 앞의 풍경이 노랗게 보이는 정도인데, 주말 내로 그쳤으면 좋겠다.
    진지 공사 및 교장 정비 작업간 내 건강에 이상이 생기긴 싫으니까.

  2. 다가오는 전역일과 텅 빈 머리
    전역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막상 공부 시작하려니 막막하다.
    차라리 누구처럼 전역 몇 달 전부터 손을 놔버리고 내 자신에게 투자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이긴 하지만... 솔직히 걱정된다.

  3. 다가오는 가을학기
    가을 학기에 복학해서 들어야 하는 과목은 정했다.
    Chemistry 210 & 211 : 다른 말로는 Orgo. Chem. 유기화학
    MSE 250 Principles of Engineering Materials
    Biomedical Engineering을 전공으로 삼기로 한 이상 이 두가지는 확실한데, 나머지에 대한 확신이 안선다.
    고등학교 시절 AP 역사과목을 들으며 획득한 lv 100의 역사 과목 크레딧을 백분 활용하여 lv 200와 lv 300 의 상위 역사과목을 수강하고 빨리 대학을 마칠 것인가, 아니면 최소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EGL, 혹은 SGUS 프로그램에 도전할 것인가.

    * EGL - Engineering Global Leadership Honors 프로그램의 약자로
    Univ. of Michigan에서 석사 학위까지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엔지니어링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지역의 문화 및 역사, 그리고 그 지역의 언어를 포함하여 Business School에서 경제학까지 이수해야 한다. 최소 GPA 3.5 이상이어야 지원가능하며 졸업할 때까지 GPA가 3.4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프로그램에서 탈락된다.

    * SGUS - Sequential Graduate / Undergraduate Study 프로그램.
    역시 Univ. of Michigan College of Engineering에서 석사 학위까지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 자신이 속한 분야의 Research를 계속 진행하며 심도있게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GPA 3.2 이상은 유지해야 한다. 

    이 것들 말고도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기숙사냐 아파트냐), 그리고 나와 같이 다가오는 2010 시즌 Michigan Football Season Ticket을 살 인원이 또 누가 있는지 등 고민거리가 한가득.

  4. 신세대 이병들의 개념
    ...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좀 보여줘라. 제발.

  5. 마지막 휴가를 둘러싼 갈등
    인원 없는건 공감하는데, 나도 이제 갈 때가 됐단 말이야...

  6. 금연
    어찌보면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담배를 줄이고는 있는데, 힘들다. 밖에 나가있으면 별로 태우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도저히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방금 쓴 말도 어떻게 보면 결국은 구차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7. 유럽여행 준비 및 계획
    이건 심각한 걱정이라기 보다는 돈 때문에 생기는 약간의 고민인 듯.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 스스로 위안삼으며 그냥 넘겨야지...

  8. 소녀시대
    이제 그만 빠져 살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은 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군인이라는 고뇌를 안겨주는 그녀들.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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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K.A.T.C. 2010. 3. 5. 19:02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내 위로 두 명 남아있네.

한 명은 곧 전역할 것이고,

다른 한 명은 3월이 가면 역시 자신의 길을 찾아가겠지.

기뻐야하는데,

생각만큼 기쁘지만은 않다.

함께 고생해온 사람들이 먼저 떠나간다는 것 -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입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간직해오고 있는 내 일기장도

이제 몇 장 남아있지 않고...

괴롭웠지만 추억이 없다고는 말 못할 이 곳 육군훈련소 생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이 곳에서 만들어진 추억과 인연을 회상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간다.

내 마지막 훈련병 기수의 퇴소와 함께...


마지막 428기 -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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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s - 10.02.19

K.A.T.C. 2010. 2. 19. 19:56

Fact 1. 우리 일에 관심가져주는 것은 우리 자신밖엔 없다.
(No one but us, the soldiers, concerns what we think and why we react)

Fact 2. 억울하더라도 바뀌는 건 아니다.
(Nothing changes though we complain)

Fact 3. 억울한 걸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는 위치까지 가야한다.
(We have to achieve a certain position in the army if you want to reform)

Fact 4. 난 여기서 그 자리까지 가기 싫다.
(I DO NOT WANT to get to that position here)

Fact 5. 오늘 학교에서 다시 입학허가를 받았다.
(I just received a confirmed readmission from the CoE, U of M)

Fact 6. 나는 지금 내가 신경쓰이는 일만 할 것이다.

(I will do what I believe it is important)

...


좀 이기적으로 보이나?

어쩌겠습니까.

언젠가는 추억으로 기억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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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than Nothing

K.A.T.C. 2010. 1. 10. 10:34
육군훈련소에서 분대장 역활을 수행하는 (속칭 '조교'라고 알려진) 기간병들은 징집병이다. 입소대대로 입소하고 난 이후 하는 적성검사나 인성검사, 그리고 개인환경 조사를 거쳐 선발되는. 뭐... 순전히 '지원'에 의해 채워지고 보충되는 인원들이지만, 합격하려면 군에 들어오고 대대장, 연대장, 훈련소 참모장 등 주요 고위 직위자들의 면담을 거쳐 선발되는만큼 받아들여지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발을 해야하는 것이고 하니 몇몇가지 사람을 혹하게하는 조건들을 내세우는데, 2개월 조기진급과 휴가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조기진급이야 시간지나다보면 큰 문제 없는 것이지만,
많은 병사들이 '휴가'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솔직히 병사의 머리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전역'과 '휴가'니까. 아무튼... 이 휴가라는 녀석이 참 사람 속을 많이 썩인다.

훈련소를 거쳐간 사람들은 알겠지만 분대장들에겐 교육기가 들어가면 개인정비시간이 '없다'. 소수병력으로 훈련병 훈육하고 교육투입하고 부대관리하려면 절대적으로 인원이 부족한데다가, 사단 신교대와는 다르게 몇몇 교육과목을 전담하는 식이 아닌 '모든 교육 과목을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교육에 이어주말종교활동인솔, 병력통제, 분대원 면담, 환자관리, 그리고 교육준비까지.. 아, 야간에 근무도 서는구나.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이 바쁜 생활패턴이 일상화되기 전까지는 거의 지옥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뭐.. 어느 부대가 힘들지 않겠냐만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표준 일과시간이 적용되지 않는 부대만큼 병사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지 않을까 싶다. 교육준비기라는 일주일 가량의 공반기가 존재하지만, 그건 다음 교육을 위한 속칭 '작업기'에 가까운 것이고... 

얼마전에 훈련소 회의내용에 병사들 보상휴가 관련해서 나온 말이 있는데,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훈련소 평균을 알아본다는데, 우리 연대는 그 평균에 미치지도 못하는데 뭐... 그걸 늘려줄 것 같지도 않고. 이제 전역할 날짜가 조금식은 보이는 편에 속하는 나야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지만, 후임들 얼굴이 않좋은데 기분이 좋을리가 있나. 그냥.. 열심히 하란 말만 하는거지 뭐.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나은 거잖아? 그냥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거지. 아무튼, 다들 '잘'해서 포상휴가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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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eu, Year of 2009

blah blah blah 2009. 12. 31. 22:57
2009년이 이제 1시간여 남짓 남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누구의 군생활이 그렇지 않겠냐만, 힘들고 짜증나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큰 탈 없이 잘 넘기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09년을 보내며... 그리고 Year Long Armed Service를 마치며...
이제 130여일 정도 남은(아직도..!!) 군생활도 슬슬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한다.
일주일 전에는 Univ. of Mich. 에 있는 내 Adviser에게 복학관련하여 서류를 요청하고,
3일 전부터는 기숙사를 다시 한번 알아보고 있다.
미시건대에서 공대 건물들이 집중되어 있는 North Campus의 Northwood Apt. 가 가장 끌린다..
갑자기 미시건이란 곳에 대해 읽어보았던 옛 농담이 있어 옮겨보면,

In Michigan,
COLD IS A RELATIVE THING. . .
(미시건에서 추위란 상대적인 것이다...)

60 above zero:
Floridians turn on the heat.
People in Michigan plant gardens.
(60 화씨 : 플로리다 사람들은 온풍기를 켜고 미시건 사람들은 정원을 꾸린다)

50 above zero:
Californians shiver uncontrollably.
People in Michigan sunbathe.
(50 화씨 :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몸을 떨며, 미시건 사람들은 일광욕을 한다)

40 above zero:
Italian & English cars won't start.
People in Michigan drive with the windows down.
(40 화씨 : 이탈리아와 영국차들은 시동이 않걸리나, 미시건 사람들은 창문열고 운전한다)

32 above zero:
Distilled water freezes.
The water in Lake Michigan gets thicker.
(32 화씨 : 증류슈가 얼지만, 미시건호의 물은 질퍽해진다)

20 above zero:
Floridians don coats, thermal underwear, gloves, wool hats.
People in Michigan throw on a flannel shirt.
(20 화씨 : 플로리다 사람들은 코트와 내의, 장갑, 모자를 쓰지만 미시간 사람들은 셔츠를 입는다)

15 above zero:
New York landlords finally turn up the heat.
People in Michigan have the last cookout before it gets cold.
(15 화씨 : 뉴욕인들도 결국 온풍기를 틀지만, 미시건 사람들은 추위 전 마지막 야외 파티를 한다)

Zero:
People in Miami all die.
Michiganders close the windows.
(0 화씨 : 마이애미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미시건인들은 그저 창문을 닫는다)

10 below zero:
Californians fly away to Mexico .
People in Michigan get out their winter coats.
(-10 화씨 :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멕시코로 도망간다. 미시건인들은 겨울코트를 꺼내든다)

25 below zero:
Hollywood disintegrates.
The Girl Scouts in Michigan are selling cookies door to door.
(-25 화씨 : 할리우드가 무너진다. 미시건 걸스카웃이 돌아다니며 쿠키를 판다)

40 below zero:
Washington DC runs out of hot air.
People in Michigan let the dogs sleep indoors.
(-40화씨 : 워싱턴 DC의 뜨거운 공기가 모두 없어진다. 미시건인들은 개들을 집에서 재운다)

100 below zero:
Santa Claus abandons the North Pole.
Michiganders get upset because they can't start the Mini-Van.
(-100화씨 : 산타클로스가 북극을 버리지만, 미시건인들은 미니밴이 시동걸리지 않아 화가 난다)

460 (-459.67 F below zero):
ALL atomic motion stops (absolute zero, zero on the Kelvin scale.)
People in Michigan start saying..."Cold 'nough fer ya?"
(절대영도 : 모든 원자활동이 멈추지만, 미시건인들은 '이제 좀 춥나?'라고 말을 건넨다)

500 below zero:
Hell freezes over.
Michigan public schools will open 2 hours late.
(-500화씨 : 지옥이 얼어붙지만 미시건 공립학교들은 평소보다 2시간 늦게 시작할 것이다)

좀 과장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 정말 내 대학이 있던 미시건의 Ann Arbor가 정말 그리워지는 글이다.
아무리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지냈던 그 곳이, 정말 그리워진다.
내년 이 즈음해서 나는 그 곳에 있겠지? 아마도..

아무튼 전역의 해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지금.
사회로 돌아가면 솔직히 군대에서 그동안 목말라하던 대학생활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데,
문제는 하루빨리 졸업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것.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고 사회를 준비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친구들이 불현듯 생각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복학보다도 더 큰 관심사는
전역 후 친구와 함께 할 2달여 가량의 배낭여행 계획을 짜는 것.
어떤 길을 따라 돌아도 즐겁겠지만, 일단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다면 동부유럽이 아닐까.
계획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야 겠다.

두서없는 한해의 마무리 글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이젠 정말 안녕이다!

Adieu,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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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연말 Part.2

blah blah blah 2009. 12. 24. 22:26
2009년이 다 지나갔다는게 이제 정말 실감이 나려한다.
절대로 나올 것 같지 않던 2010년 달력도 새로 나오고,
절대로 보일 것 같지 않던 내 전역일도 몇장 넘기다보면 보이니까.
그래도... 뭔가 아쉬운 것은 남는 법이다.

2008년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취사장에가서 캐롤을 들으며 식당 상판을 이틀연속 바꾸고 나르는 작업을 하면서 보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까?
우선 새로 신축된 김대건 성당에서 미사를 보며 하루는 시작하고,
그리고 나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바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모르는 이 기분.
크리스마스뿐만이 아니라 2010년을 맞는 내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단 1월에 휴가를 나가게 되면 꿈에서만 그리던 학교로의 복학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그 동안 연락을 자주 주고 받지 못하던 많은 이들에게 다시 내 존재를 알리고...
그리고 그동안 생활에서 사라졌던, '공부'라는 패턴을 다시 익혀야 하겠지?
음... 또 무엇을 해야 하나.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당장 2010년에 무엇을 해야할지를 정하는 것보다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를 생각하는 것.
이제는 그래도 병장이라고 나만의 시간이 나는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막막하다고나 할까?
예전에 선임이 했던 얘기 하나가 생각난다.
미친듯이 일만하던 우리에게는 개인시간이 주어지더라도 무엇을 할 지 모른다고.
우리는 일하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그래서 어떻게 의미있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모른다고.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아 더더욱 슬퍼진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계획을 세워보려한다.
앞으로 이 곳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이 곳에서 나간 후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며 말이다.
군에 와서 성숙해진다는 말은,
아마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비록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내게 주어졌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
바쁘고 개인정비 여건이 보장이 안되는 훈련소 조교생활을 하면서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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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연말 Part.1

blah blah blah 2009. 12. 13. 18:33
항상 이 시기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번 1년은 어땠는지,
내 자신은 어땠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일종의 자기성찰이랄까...?
조금 빠른 감이 없진 않지만, 몇마디 적어보려고.

논산 육군훈련소 기간병의 생활은 어찌보면 참 단조롭다.
남들이 보기에는 같은 5주 신병교육의 연속이고,
우리가 보기에도 같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까.
일에 그만큼 숙달이 되는 것도 더 빠르다고 볼 수 있다.
병기본 과목에 대해서 다른 곳보다 빠르게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요,
이병때부터 사람들을 다루고 지휘하는 법을 배워야하기 때문에 일처리 능력도 빠르게 향상된다.
하지만.
하지만 말야.
같은 부대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하는 고충이 있다는거,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지 않을까...

이병에서 시작해 일병, 상병, 그리고 병장에 이르기까지...
나름 내 목표를 가지고 생활해왔다.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한결같이 생활하겠다는 목표를.
아래층에서 훈련병들과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훈육을 서지 않는이상은
후임들과 같이 화장실 청소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작업할 때면 이것 저것 노하우도 알려주고...
굳이 다른 말로 하자면, 정말 본받을만한 선임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나역시 사람이었기에,
원하지 않았던 짜증도 내고 화를 내기도 한 기억들이 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고...

내년 이 즈음이 되면...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웃으며 추억하고 있을까?
오늘 부대를 방문한 두명의 전역자들을 보며 문득 며칠전에 했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나중에는 이 고비를 같이 넘긴 모든 이들을 추억하며 웃는 시간이 내게도 올 것이라고.
그때까진...
그때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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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Lux in Tenebris Lucet

K.A.T.C. 2009. 9. 27. 14:48

군에 입대한 후 처음으로 부대 내에서 블로그에 글을 남겨보는 것 같다.
쓰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기에...
내 스스로 조심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닐까?
골치아픈 문제들을 만들기는 싫으니까.

그래도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취향은 사그라들지 않았나보다.
훈련병 시절 받았던 수양록은 벌써 2/3이상이 가득 채워져있고,
그에 모자라 조그만 노트를 항상 휴대하며 조금씩, 그리고 조심스레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으니까.

"Et Lux in Tenebris Lucet" - "어둠 속에도 빛은 있다" 라는 뜻이다.
군생활을 어둡다는 것에 표현하는 것에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병생활을 하는 장병들에게는 사회와 단절되는 기간이 '어둠'과 같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보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대 내에서 평생 해보지도 못한 일들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수행하고 통제를 받는 생활은
분명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그 것에 비해 볼품없어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빛'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주변의 소소한 일들이 가져다주는 작은 행복감... 그리고 자신의 열정과 꿈에 대한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것.
충분히 어둠 속의 '빛'이 될만한 일이 아닐까?
마음먹기 나름이다... 적어도 그동안의 내 기록들이 담긴 수양록은 이를 증명해주니까.

어느 덧 육군훈련소에서 빨간챙의 모자, 그리고 어깨위의 녹색 견장을 찬 채
훈련병들을 지도하며 지낸 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다양한 곳에서 온 수많은 이들을 만나며 내 자신또한 배운 것들도 많은 것 같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좋은 추억보다는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 많은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이기에
얼마 안되는 좋은 추억들이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지금 이 날들의 추억들을,
그리고 기록이 아니었으면 잊혀졌을 이 곳에서의 추억들을
이 공간에 다시 기록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그 때를 위해서...
지금 내 위치에서 좀 더 노력하자. 빛을 찾아서.

Nothing changes for one who complains,
Nothing changes for one being complacent,
And Nothing changes for one being hopeless.
Et Lux in Tenebris Lucet...
Light will shine upon one with passion and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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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대장이다

K.A.T.C. 2008. 9. 14. 21:27
녹색 견장과 분대장 휘장

Photograph by O.S.T. (분교대 동기)

2008년 6월 23일, 논산 육군훈련소에 특기도 없는 일반병으로 입대를 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곧 마주치게될 현실에 대한 걱정이나, 군생활에 대한 비전은 생각하지도 않고 군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동기들과 자대관련 이야기를 나눌때면 괜한 걱정이 들곤했다.
그러던 도중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육군훈련소의 '분대장' 이라는 직책, 사회에서 '조교' 라 알려진 자리였다.
어둠속에서 마주친 한줄기 빛처럼 느껴진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훈련소의 중대장, 교육대장, 연대장, 그리고 훈련소 참모장을 비롯한 여러 높은 간부들과의 면접이 있었다.
분대장을 하고 싶은 이유, 분대장으로서의 각오 등 여러가지 내용을 가지고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주로 리더쉽을 기르고 색다른 종류의 협동심을 배워나가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배출을 하루 앞둔 7월 31일 오후, 분대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을때는,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됐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

8월 23일, 짧은 자대 생활 이후 '분대장 교육대' 라는 곳으로 3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갔다.
육군훈련소 '분교대'의 분대장들은 나를 비롯한 '예비 분대장'들을 인정사정없이 '굴렸다'.
체력적인 한계에 여러번 다가가고 넘어서기를 반복했고, 정신적으로는 내 자존심을 여러번 짓뭉개고 버려야했다.
"Pain is the evidence of weakness leaving my body" 라는 말을 가슴속에 각인시킨채 이겨나간 3주...
지옥같았던 나날이었지만, 확실히 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듯 하다.

부모님의 참관과 훈련소장님의 주관하에 이루어진 수료식 -
녹색 견장과 휘장, 그리고 조교모를 수여받을때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던 알 수 없던 감정...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면 이 견장과 휘장, 그리고 조교모를 착용하고 훈련병들을 일선에서 지도할 것이다.
물질적인 무게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 물건들이 내게 주는 책임감의 무게를 알기에...
아직 한없이 미숙한 나 자신이지만, 절대 물러날 수 없다.
내가 택한 길인 만큼... 그리고 나는 육군훈련소의 '분대장' 이니깐...
내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 최선을 다해 완수해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는 분대장이다.
나는 분대장이다.
나는 분대장이다.

절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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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느껴보는 무언가 풀린듯한 이 기분.

가족들과 함께여서?

지난 시간들이 힘들어서..?

글쎄..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만은 참 편하다...^^

일단은 이 상황을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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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this January that I learned my military service in the Korean military would start this coming June 23rd for next two years. I tried not to panic since it is required for every Korean male citizen with a healthy body. I went to the class as if nothing happened, hung out with my friends without telling them, and calmed my parents down. Maybe I just wanted not to show my emotional weakness to no one around me, since I had been raised independently due to my parents' early busy jobs.

Time flied fast. Just about two hours ago, a digital clock indicated that it is now June 20th, 3 days before my active service starts. What can I do now? What should I do? I have been asking these very same questions to myself for days, but I still do not have a clear answer. I suppose many young male Korean citizens in my age are having the similar agony I have right now, though in different places and with different people.

Similar to Israeli citizens, every South Korean citizens but females have a mandatory duty of serving the country in the military. The service is originated from the special condition that South Korea had since 1950's: the unfinished war againt North Korea's Communist (more like a tyrant) state. The continued intense tension was somewhat released in modern days, but the still existing threat of potential warfare keeps the government deploy the young male citizens aging from 18 to 35 for about two years for the active service in the military (it had been three years in the past, but the reduced threat by the overpowering modernized Korean military helped to shorten the length of the service).

Facing the upcoming date of June 23rd, 'Mixed Blend of Anxiety and Sadness' is perhaps most appropriate in describing my attitude. I have disguised my very own emotion for past six months from most of people around me (the only time that I revealed myself was when I was having a fianl banquet with U. of M. Glee Club at the end of the Spain concert tour in May 13th). Although I have concealed myself in a hard shell, my parents often talked to me that the living conditions in the modern army is not like the ones in the past. Regardless what they say, however, it doesn't comport me much.

I do not fear the disciplining process in the military, since I understand that the special rules and orders that must be kept in the military. I even do not fear to be drafted to some kind of special forces or the divisions stationed in the DMZ. Separation from my family? That wouldn't be a no problem since I have lived apart from my family members in the United States for past 5 years. However, the fact that I would be kept by an 'invisible wall' saddens me the most. I would be able to reach my friends occassionally, but I wouldn't be able to do anything while watching my friends advance in their fields of study: I would be kept away from busy running society for two years. It would feel as if the invisible walls are forming the invisible, transparent cage around me. I didn't volunteer for the service. I do not like this tragic situation that my country has.

Well, I believe I may have some invaluable experiences, which I will never be able to earn outside of the military. On the other hand, however, whenever some of my friends pity me, I wonder whether those experiences will compensate for what I will lose for next two years.

I hope the second one is not my case - hope I can find something great to carry until the end of my life, while being kept by the invisible 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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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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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있는 모습을 서로 보고 있자니 무언가 어색하다.
그 어색함도 잠시,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마냥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추억하는 과거는 모두 행복한 기억뿐이다.
가끔 누군가 부끄러운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곧 웃음에 묻혀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현재의 불안정함으로 이어진다.
함박웃음으로 가득하던 술잔이 어느새 쓰디쓴 술로만 가득차고...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던 친구도, 관심 없다는 듯 얘기하던 친구도 격렬히 울분을 토한다.
그렇게 친구들과 쓰디쓴 술을 들이키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친구를 바라보니,
군에서 휴가나올때 일절 정치나 현 시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나왔댄다.
그래, 비록 공공연히 말은 못하겠지만 그 친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이제 곧 나 또한 곧 그 친구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되겠지...
31일 집회이후 나를 괴롭힌 괴리감이 다른 형태로 다가오더라.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친구가 헤어지기 전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커버렸을까...?' 라고...
대답없는 내게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어딜가든, 아무리 더럽고 괴로워도 참아라... 그리고 때론 생각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
비록 어두운 길을 걸에서 어설프게 웃으며 녀석에게
'걱정마라, 네 친구를 아직 잘 모르는구나'라고 답했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진 듯 하다.
나를 위해 지난주에 휴가 나왔던 다른 친구가 했던 말과 왜이리 비슷한걸까?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군인은 의무도 있지만 잘못된 명령에는 저항해야 한다' 라는 글을 봤다.
하지만 어젯밤 내게 말하던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려보니, 꼭 그렇게 배우는 것 같지도 않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군대는 옛날 군대같지 않다라고 말씀을 하곤 하시지만,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3주 후 이 시간이면 논산으로 향하고 있을텐데,
그때에도 내 마음은 이리 무겁고 답답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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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
We shall find peace... We shall hear angels... We shall live under the blue sky sparking with diamo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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